202401010 청파교회 새벽설교
나를 발견하게 해 주는 책
<예레미야 2장 33-35절>
33. "너는 연애할 남자를 호리는 데 능숙하다. 경험 많은 창녀도 너에게 와서 한 수 더 배운다.
34. 너의 치맛자락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죄없는 피가 묻어 있다. 그들이 담을 뚫고 들어오다가 너에게 붙잡힌 것도 아닌데, 너는 그들을 죽이고서도
35.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렇게 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
예레미야의 등장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2장입니다. 예레미야 1장에서도 이미 나누었지만,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이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라는 예언자에 의해서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물론 그가 직접 기록했는지는 더 이야기 나눠봐야겠지만, 52권으로 이뤄진 이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앞서 다룬 이사야 예언자보다 100여 년 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바로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대 중동의 권력은 앗시리아에서 바빌론으로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혼란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남유다 백성들의 죄악이 끊이지 않았고, 외부적으로는 강대국의 패권이 이동하는 시기라서 혼돈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예언자 예레미야가 등장합니다.
예레미야의 시작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제사장 가문의 출신입니다. 제사장은 성전에서 예배를 준비하고 율법을 낭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전 중심으로 지내던 사람이 성전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물론 제사장 가문 출신의 선지자에는 예레미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겔도 제사장 가문의 출신이었고, 스가랴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예레미야는 어린 나이에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물론 어리다는 기준이 지금과는 다를 순 있으나, 자신은 예언자의 역할을 하기엔 너무 어려서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1:6). 그러나 주님은 시작하고자 하시는 일을 끝내 이루고 마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그를 돕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 일했던 예언자이자 성전이라는 문턱을 넘어서 주님의 일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궁금해집니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어디에 쓰시려는지가 궁금해집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실망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겼습니다(2:13).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기 때문에 잘못을 돌이킬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결정하십니다.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늘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예언자를 먼저 보내어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에서 돌이킬 기회를 마련해 주십니다. 그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주님은 예레미야를 세운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유다 백성들의 회개와 심판을 촉구했고, 다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길 바랐습니다. 이 이야기가 <예레미야서>의 전체 흐름입니다.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본문 서두에는 먼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부터 등장합니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따랐는지를 상기시켜 주라고 말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을 정성스레 따랐고, 주님은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자신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했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금세 잊은 채 헛된 우상을 좇기 시작합니다(5). 그들은 주님께서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셨는데도 그 땅을 더럽히고, 주님의 것들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7).
이제 주님은 이스라엘을 규탄하십니다. 그들을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방 민족들을 불러내어 이스라엘 민족의 배신을 밝힐 증인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 이 대목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는 크고 단호하나 그분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심판해야 하는 그 모순적인 상황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하는 남유다
이어서 주님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잘못을 꼬집으시는데,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운 바가 없음이 드러납니다. 남유다에 앞서 BC 722년에 먼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을 함락시킨 민족이 앗시리아입니다. 당시 남유다 사람들 또한 큰 피해를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앗시리아가 벌인 일과 북이스라엘이 당한 일을 결코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음으로 (북이스라엘에 이에) 멸망의 순서를 밟으려고 합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여전히 앗시리아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앗시리아로부터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집트를 의지하고자 합니다(18).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다시 바뀌게 되는데, 이번에는 강성해진 이집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은 나라가 바로 앗시리아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앗시리아를 의지하려고 합니다(18).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는 이 남유다 사람들은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여 주는데도, 네가 주를 버리고 떠났으니, 너 스스로 이런 재앙을 자청한 것이 아니냐?”(17) 남유다의 변덕이 그들의 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방법
이어서 20절부터는 남유다 사람들의 우상 숭배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수차례 (다른 이방신들에게) 곁눈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한 것이 무색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20).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미혹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 고 그렇게 일렀건만(24) 자신들은 괜찮다고, 오히려 이방 신들이 좋으니 그들을 쫓아다니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25).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그들의 모습이 한심하고 답답한데, 주님의 편에서 봤을 때는 이러한 남유다의 모습이 얼마나 더 한심하고 화가 나겠습니까?
남유다의 우상숭배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들은 나무를 보고 ‘나의 아버지’라고 하였고, 돌을 보고 ‘나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27). 그러다가 자신들이 환난을 당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님께 ‘오셔서, 우리를 구하여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습니다(27).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정도로 낯이 두꺼운 민족이었습니다. 이어서 몇 가지 죄악이 더 거론되는데, 그들은 주님께서 따끔하게 혼을 내어도 돌이킬 줄 몰랐고 오히려 주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30). 그리고 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도 했습니다(34).
교훈과 충고를 하여도 돌이키지 않고, 매를 맞아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은 죄가 없다며 뻔뻔하게 행동합니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심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은 하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렇게 죄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35)
나를 발견하는 책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는 듣기에 불편한 책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잘못을 통해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성경의 핵심은 심판이 아니라 사랑에 있음을 말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성경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를 돌아보십시오. 나를 돌아보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일이자 나와 맺은 모든 관계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사람은 타인과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기에 하나님이 더해집니다.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세상으로 이루어진 인격체가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심판을 가장한 하나님의 사랑 메시지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늘 기다리십니다. 오늘 하루, 심판 메시지 이면에 담긴 그 사랑의 요청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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