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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BOOK 리뷰] <유다>, 아모스 오즈

<광신자 치유>라는 얇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평화 운동가이자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AMOS OZ)'. <광신자 치유>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지만, 짧은 이야기 속 깊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는 맹목적으로 뭔가를 추구하는 모든 광신자의 본질을 꿰뚫는다. 누구나 광신자가 될 수 있고 이미 대부분의 사람은 광신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치나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아모스 오즈가 쓴 마지막 소설이자 두 번째로 접한 책 <유다>는 소설가로서 그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했다. <유다> 또한 <광신자 치유>처럼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분쟁과 전투의 상흔뿐만 아니라 한 젊은이의 성장과 사랑, 가족과의 관계, 상처 또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과 같은 이야기가 다채롭게 담겨 있다. 책이 두꺼웠기에 내용 전개가 흥미로웠음에도 완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기억에 남은 몇 가지를 두서없이 남겨보려 한다. 

<유다>는 첫 페이지, 바로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에 내용 전체가 요약되어 있다. 이 함축적인 문장의 이야기가 이후 펼쳐진다. 

"1959년 말에서 1960년 초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실수와 욕망, 실패한 사랑과 답 없이 여기 남겨진 어떤 종교적 문제가 담겨 있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1)

위의 문장을 나름의 방식으로 나열해 보았고 이 나열된 이야기들에 밑줄 친 책의 내용을 적는 방식으로 리뷰를 해볼까 한다.

 

1. 분쟁 : 이스라엘 쪽 예루살렘과 요르단 쪽 예루살렘 사이에 드리워진 장벽(물리적/심리적) 

"진실로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없어요. 미워하는 사람을 노예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광신도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바꿀 수는 없지요. 그리고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복수에 목마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요 - 친구로. 자,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예요.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광신도를 온건한 사람으로, 복수하고 시비를 걸려는 사람을 친구로 바꾸는 것 말이에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58)
슈무엘이 소심하게 대꾸했다. "당신은 48년에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아니요. 당신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벽이었죠."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76) 


2. 성장 소설 : 슈무엘이라 청년의 꿈과 사랑, 이별

"라타크라는 낱말의 어원은 <예루살렘 탈무드>에 나오는데, 이스라엘식 아람어로 라타카 - 울타리를 두른 지역이라는 말이지, 그리고 여기서 매혹한다는 동사가 나왔는데, 묶다, 사슬로 묶어 두다, 쇠고랑으로 가두어 둔다는 뜻이라네. 여기서 쇠고랑은 족쇄와 비슷한 것일 거야. 아니면 고삐 같은 것이거나."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79-80)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말해두는데, 이 친구야,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명의 사내나 한 땅을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두 민족은 - 커피를 강물만큼 나누어 마신다고 해도, 그 강은 그들의 미움을 끌 수 없고 많은 물로도 그것을 씻어 낼 수 없다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04) 
"솔직히 나는 아직도 매번 다시 깜짝 놀란다네. 남자가 젊은 여인을 만나는 방식과 젊은 여인이 남자를 만나는 방식 중에는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418) 


3. 종교 간의 갈등 :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오래된 갈등

"유대교와 기독교, 물론 이슬람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꿀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은 자기들 손에 수갑, 쇠창살, 지배권, 지하 고문실과 교수대가 없을 때뿐이지. 이런 모든 종교는, 지난 세기에 태어난 수많은 종교 중에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고 있는데, 모두 우리를 구원하러 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피를 쏟게 만드는 것이라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세상의 행복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일세.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이 그 자체로 매우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건 분명히 아니지, 이 세상은 비뚤어졌고 암울하며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회복시키겠다고 나타난 자들이 순식간에 피의 강에 빠져들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일세."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03-104) 
"언젠가 이 세상에서 모든 종교와 모든 혁명이 사라지기만 한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 마지막 하나까지, 예외 없이 - 이 세상에 전쟁들이 훨씬 적게 일어날 걸세. 사람이란, 이마누엘 칸트가 쓴 적이 있는데, 결국 본성상 비뚤어지고 닳아빠진 그루터기일 뿐이라고 했지. 우리가 목까지 피에 잠겨 건널 생각이 아니라면 그를 대패질할 생각도 말아야겠지."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04) 
"이 두 민족은 서로 간에 공통점이 정말 많지 않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 속에서 기독교 유럽의 희생 제물이었어. 아랍인들은 식민지 제국들에 굴복하고 나서 압제와 착취를 당했고, 유대인들은 대대로 굴욕, 박해, 추적, 추방, 악행을 당하다가, 결국 세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민족 대학살까지 당했지. 기독교 유럽의 희생 제물이 된 뒤 두 민족이 서로 동정하며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역사적 기초가 정말 없느냐고, 쉐알티엘은 말했어."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38) 


4. 문제의 해결 :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계속된 줄타기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지."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03)
"나는 모두가 모두를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네. 사랑의 크기는 매우 제한적이야. (...)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자기가 제삼세계 전체를 사랑한다고, 또는 라틴아메리카를 사랑한다고, 또는 여성 인류 전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화려한 문학적 수사일 뿐이라고 하겠네. 입에 발린 말. 구호. 우리는 아주 소수의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태어났다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02) 
"사랑은 개인적이고 특이하며 모순이 가득한 사건이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 이기심, 탐욕, 육체적인 욕망 때문에, 사랑받는 사람을 조롱하고 그를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굴복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예도 적지 않고, 사실-사랑은 미움과 매우 닮아 있고 사람들이 대부분 무시하고 있지만 미움에 훨씬 가깝다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02-203) 
"또 토마스 만은 어딘가에 미움이란 수학의 마이너스 기호가 붙은 사랑이라고 쓴 적이 있고 말이야. 질투의 크기를 보면 사랑이 미움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데, 질투 안에서 사랑이 미움과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야. <아가>를 보면, 한 구절 안에,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03) 
"그리고 또 이 말도 해 두는데,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자들은 복이 있고 눈뜬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네. 물론 꿈꾸는 자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자들도 그렇겠지만, 꿈도 없고 꿈꾸는 자들도 없다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저주가 일곱 배는 더 무거워질 걸세. 꿈꾸는 자들 덕분에 우리도, 눈뜬 자들도, 그들이 없을 때보다는 좀 덜 무서워하고 덜 절망할 걸세."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04) 
"특히 - 그의 아랍인 친구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를 통해서, 사실 여기에 두 공동체가 살아갈 충분한 공간이 있으며 그렇게 나란히 또는 하나 안에 다른 국가라는 틀 없이 공존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혼합된 공동체로, 아니면 하나가 다른 하나의 미래를 위협하지 않는 두 공동체가 어우러져 공존하는 거예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78) 
"눈은," 게르숌 발드는 말했다. "영원히 떠지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눈을 감고, 자기들 삶의 길을 건너가지. 자네와 나도, 친애하는 슈무엘. 눈을 감고 있네. 만약 단 한 순간만이라도 우리 눈이 떠진다면, 우리 속에서 크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지르며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을 거야.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밤낮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다면 우리 눈이 감겨 있다는 증거지."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10) 
"쉐알티엘은 말하곤 했네, 실제 인류의 재난은, 쫓기고 압제당하던 사람들이 해방되고 당당히 일어서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니지. 가장 사악한 것은 압제를 당하는 사람들이 실은 마음속으로 자기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압제하는 자가 되기를 몰래 꿈꾸는 일이라고 했어. 쫓기는 자들이 쫓는 자들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지. 종들이 주인이 되는 날을 꿈꾼다고 했어. <에스델>에 나오는 것처럼."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40-341) 
슈무엘은 말했다. "그 안에 변화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어떤 변화도 인정할 수 없고 변화가 생기는 것을 죽을 만큼 무서워하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사람들 눈에 언제나 배신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어요.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의 꿈 때문에 그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른 거예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74)  


5. 유다 새로 보기 : 기독교의 배신자 유다와 유대인 배신자인 아탈리야의 아버지 아브라바넬 

"정말로, 슈무엘은 공책에 썼다. 정말로 믿는 사람 중에서 어떻게 자기 스승을 30세겔이라는 헐값에 팔아넘긴 이가 너무 슬픈 나머지 곧장 일어나서 스스로 목을 맬 수 있었을지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다른 제자 중에 아무도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죽지 않았다. 유다가 그 메시아가 죽은 뒤에 더는 살기를 원치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87) 
"전 예수를 로마인들에게 넘긴, 그러니까 30세겔 때문에 말이죠. 그 사람에 관해 자꾸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말해 줘요, 당신이 보기에 그 말이 논리적인가요? 30세겔 때문에요! 유다처럼 부유한 사람이, 가룟 마을에 토지와 유산이 있었을 사람이 말이에요. 혹시 그 당시에 30세겔이 얼마나 되는 돈이었는지 아세요? 아주 적은 돈에 불과해요. 보통 노예 한 사람 값이에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25) 
"가룟 유다의 입맞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입맞춤은, 당연히 배신자의 입맞춤이라고 할 수 없죠.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를 체포하라고 성전 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는 가룟 유다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스승을 알려 줄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바로 며칠 전에 성전에 들이닥친 예수는 분노에 가득 찬 채,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환전상들의 탁자들을 뒤집어엎었거든요. 벌써 온 예루살렘이 그를 알고 있었죠. 더구나, 그들이 그를 잡으러 왔을 때 그는 도주하려 하지 않았고 조용히 일어나 스스로 간수들과 마주 섰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갔으니까요. 유다의 배신은 그 간수들이 오고 그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 벌어진 것이 아니에요. 그의 배신은, 만약 그가 예수를 배신했다면,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을 때 일어났어요. 바로 그 순간에 유다가 자기 신앙을 잃었던 거죠. 그리고 자기 신앙을 잃은 그는 더 살아 있을 이유도 잃어버렸던 거고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75) 
"내가 장담하건데, 가룟 유다건 가룟 유다가 아니건, 이 세계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을 걸세. 사라지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았을 거야. 유다가 있건 없건 간에, 유대인은 믿는 자들의 눈앞에서 계속해서 배신자 역할을 맡았을 걸세. 기독교인들은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와도 언제나 우리를 십자가 사건이 있기 전에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그의 피 값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치던 군중으로 기억할 걸세. (...) 우리와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훨씬 더 깊고 어두운 문제가 있어서 앞으로 100세대가 지나도 계속될 걸세. 그들이 엄마 젖을 먹는 아이 때부터 아직도 이 세상에 신을 살해한 자들이, 또는 신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들이 활보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한, 우리가 편히 쉬는 일은 없을 걸세."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378-379)  
"그는 왜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을까?" (...) "그 순간에, 나는 내 눈을 크게 뜨고 그도 결국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보았어야 했다. 우리 중에 가장 위대하고, 우리보다 훌륭하며,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지만, 그러나 살과 피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408) 

 

6. 남성 : 아탈리야와 남자 

"아탈리야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뭣 떄문에요? 그녀가 보기에 대부분 남자는 유치하게 굴고 계속해서 성공과 승리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면 괴로워하다가 삶의 기쁨과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30)
"나는 '평범한 대중'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평범한 대중, 그런 건 없어요. 남자와 여자가 있고 다른 여자와 다른 남자가 있을 뿐이고 그들은 각자 이성과 감정과 성향과 서로 다른 윤리적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사실 남자들의 윤리적 판단이란,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건 오직 자기 본능이 잠깐이라도 만족하고 있을 때뿐이겠지만 말이죠."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169-170)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해요. 벌써 몇천 년 동안 온 세상이 당신들의 손안에 있었는데 당신들은 세상을 아주 끔찍한 곳으로 바꾸어 버렸어요. 도살장으로요. 이제 당신들을 이용하기만 할 거예요. 가끔은 당신들을 동정하거나 당신들을 좀 위로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죠. 무엇에 관해서? 나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당신들의 장애를 위로해야 하겠죠."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281) 
"그녀(아탈리야의 엄마)는 부엌에 자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편지를 하나 남겼는데, 어떤 인간도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우리는 모두 우리를 멋대로 움직이는 힘에 좌지우지된다고, 썼어요." (아모스 오즈, <유다>,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p.420)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이작가야의 문학생활 (Lee's Literature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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