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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바람이 불더라도 굳건한 성탑처럼 서라

두 개의 문장이 서로 대화를 이어갔다. 박노해 시인이 말을 걸었고 단테 알리기에리가 응답했다. 

우리 할머니 말씀

어린 날 글자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가 그랬지

아가, 없는 사람 험담하는 곳엔 끼지도 말그라
그를 안다고 떠드는 것만큼 큰 오해가 없단다

그이한테 숨어있는 좋은 구석을 알아보고
토닥여 주기에도 한 인생이 너무 짧으니께

아가, 남 흉보는 말들엔 조용히 자리를 뜨거라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우리 할머니 말씀'

 

그때 뒤에 있는 영혼 중 하나가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걸 좀 봐! 뒤따라가는 자의
왼쪽에 빛이 들지 않잖아!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걷고 있어!"
이 말을 듣고 눈을 돌리자
(...)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영혼들이 보였다. 
선생님(베르길리우스)이 나를 꾸짖었다.

1. 박상진 교수 번역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 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 

2. 조승연 작가 번역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수군거리는 것들이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나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 뒤에 꼭 붙어서 따라오고, 
사람들은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바람이 아무리 불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성탑처럼 서라! (...)"

단테 일리기에리, <신곡-연옥편>,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21, p.44-45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 그런 말은 사랑이 마치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하는 것처럼 말해지기에 흔하진 않지만 알아채기 어렵진 않다. 새겨들을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큰 거부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은 그저 흘러나오는 말일뿐 새겨들을만한 말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말도 사람 마음에 잘 흡수되는 게 문제이다.

 

박노해 시인은 할머니의 입을 빌어 손주를 향해 없는 사람 험담하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것만큼 큰 오해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이다. 지혜가 축적된 아름다운 노인의 말이다. 이 말을 단테가 이어받는다. 단테는 산채로 연옥에 도착한다. 연옥에 있던 영혼들은 살아서 이곳에 온 단테를 알아보고 그에게 한 마디씩 건넨다. 이에 흔들리는 단테를 보며 그의 스승인 베르길리우스는 따끔하게 훈계한다. 조승연 작가의 번역이 더 와닿아 그의 말로 옮겨본다.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수군거리는 것들이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내 뒤에 꼭 붙어서 따라오고, 사람들은 떠들게 내버려 두어라! 바람이 아무리 불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성탑처럼 서라" 

 

험담하는 사람은 험담하는 대상을 다 안다고 여기는 자기 이해에 함몰된 사람이기에 그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모호한 만큼 한 인간의 세계도 다 알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 험담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 험담도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택해야 한다. 떠드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든지 아니면 그 수군거림이 내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든지 말이다. 지혜로운 할머니는 남 흉보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단테는 수군거리고 떠들어대는 이들의 무력함을 고발한다. 당신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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