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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슬픔의 힘

 

간밤, 우연히 보보의 <늦은 후회>를 듣게 됐다. 아니, 본 게 맞는 것 같다. 뮤비에는 故 이은주 씨가 등장했고, 90년대 감수성답게 짧은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노래 가사와 그녀의 연기력에 잠시 감탄을 하다가 그녀의 이력이 궁금해 검색해보았다. 은주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5살이었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던 그녀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 우울이라는 병이 자신을 죽음에까지 내몰 위험한 병인지 몰랐다고 그녀는 유서를 통해 말했다.

 

그 우울증이 언제, 어디서 온 건지 그녀의 몇 마디 말과 유서를 통해 추측할 뿐이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 우울감이 시작됐는지 어느 누구도 알 길이 없다. 본인도 몰랐겠지. 그리고 결과는 축적된 것들이 와르르 한 번에 무너진 작용에 다름 아닌 것을.

 

왜 뜬금없이 故 이은주 씨에 관해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늦은 후회>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과 실제 그녀가 겪은 우울감 그리고 뭔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 같은 슬픔이 뒤늦게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지독한 연민의 감정.

 

철학자 故 김진영 선생님이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책 <애도 일기>를 읽고 있다. 바르트는 사랑했던 어머니를 잃고 그 슬픔을 주체할 길 없어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짧은 글로 남겨두었다. 2년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그는 개념으로써의 슬픔이 아닌 경험으로써의 슬픔 속에 빠져 있었다. 슬픔의 경험은 그렇게 무섭고, 슬픔의 감정은 그렇게 무거웠다.

 

<늦은 후회>로 시작된 묵직한 감정이 이렇게 마음을 가리산지리산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무엇이 이 연민에 붙들리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오늘 하루가 먹먹할 뿐이다. 내버려 두면 오래 지속될 것 같아 글이라도 써서 털어버리려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 오랜만에 작은 슬픔이 몰려왔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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