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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근본에 있어서 시대와의 불화(不和)이어야 하리라. 사건과 같은 충격 그리고 충격 이후에 비로소 돌출하는 후사건(後事件)이 깨달음의 본 모습이 아닐까.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신영복, , 돌베개, p.100-105 자신이 깨뜨려져야 얻어진다는 '깨달음.'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깨어지고 또 깨어졌는가. 우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능동적이어야 하겠지만, 수동적이지 않은 깨달음을 맞이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틀을 깬다는 것이 꽤나 고통스럽기 때문이.. 더보기
[에세이] 변방(邊方)을 찾아서 평상시 주일과는 다르게 청년들이 이른 저녁 집으로 향한다. 나 또한 익숙치 않은 밝음에 등떠밀려 집으로 향하려 한다. 지하철 역을 내려 발걸음을 옮기다 문득 가방 속에 고이 넣어둔 책이 생각나 잠시 발끝을 돌려 커피숍으로 향한다. 조금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 사람들의 미미한 소음을 끌어안고 책을 펼친다. 글이 이렇게 위로가 되고 따스할 수 있을까. 오래전 사뒀지만 읽지 못했던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본다. 그러다 마주친 '변방(邊方)을 찾아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다. "중요한 것은 변방이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변방성, 변방 의식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록 어떤 장세(場勢)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모름지기 변방 의식을 내면.. 더보기
[에세이] 호접몽(胡蝶夢),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우리 욕망의 실재와 만나는 것은 바로 그리고 오직 꿈 속에서일 뿐이라는 사실을 침작하자마자 전체적인 강조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적 현실, 우리가 인정 많고 점잖은 사람들로서의 통상적인 역할을 취하는 사회적인 세계의 현실이 어떤 특정한 '억압'에 의존하는, 다시 말해 우리의 욕망의 실재를 간과하는 것에 의존하는 환영illusion인 것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비슷한 이야기가 떠올라 검색창에 '장자, 나비'를 검색했다.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이야기였다. 장자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꿈에서 깬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이 꿈에서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랑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는 '물아일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