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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그리워하는 마음

20151129 쓰임교회 속회예배 및 주일설교

 

그리워하는 마음

 

<데살로니가전서 3장 9-13절>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줄 수 있기를 밤낮으로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의 길을 친히 열어 주셔서, 우리를 여러분에게로 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13.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이번 주부터 대부분의 교회들은 대림절로 지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예수께서 오심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림절’은 ‘강림절’, ‘대강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강림절 혹은 대강절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다, 강림하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감리교회에서는 ‘강림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청파교회와 쓰임교회를 비롯한 몇몇의 감리교회들은 조금은 권위적인 표현의 ‘강림절’보다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대림절’을 사용합니다. ‘갑자기 누군가 찾아온다.’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이 두 가지 표현은 느낌 자체가 다르긴 합니다. 저는 어떤 이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더 애틋하고 간절한 느낌이 들어 ‘대림절’이라는 표현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기다린다는 것은 늘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배경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자 신약성서 27권 중에서도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인데요. 이 서신은 1장 서두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설립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방해와 간섭으로 급히 이곳을 피해 ‘베뢰아’ 선교에 나섰고, 남쪽 ‘아덴’ 지금의 ‘아테네’까지 이동을 했습니다. 정확한 기록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추측만 할 뿐인데, 바울이 1장 1절의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언급한 것을 보고 ‘고린도’를 기록장소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이 궁금해 ‘디모데’를 파송하였고, 돌아온 디모데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본 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기록 시기는 대략 AD 49-50년경).

 

이 교회는 개척된 지 얼마 안 된 신생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소문이 난 교회(살전 1:7-8)였는데 구성원들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살전 1:9; 2:14)과 소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행 17:1)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지속적인 고난도 감수해야 했고(1:6), 동족인 이방인들로부터 핍박도 받아야 했습니다(2:14-16). 일상적인 마찰(4:10-12)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예수의 재림 이전에 죽은 성도들의 미래와 관련해서 고민(4:13-18; 5;1-11)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은 이러합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오늘 본문은 ‘바울의 개인적인 바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의 간구’가 담긴 부분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그리움’

 

말씀을 준비하며 오늘 본문을 한참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줄기를 잡기가 어려워 머리가 멍해지고 돌아오기가 반복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이 서신 전체와 오늘의 본문이 바울의 ‘그리운 마음’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 애틋하면서도 누군가를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어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 사랑을 나눈 이들을 몹시 그리워하며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 10절에 ‘여러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배들 없이도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성도들이 너무나 대견했고 하나님께 감사해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들과 어서 만나기를 바라되, 다시 만날 때까지 성도들이 서로 간에 또 교회 밖에 있는 이들과도 사랑을 나누되 그 사랑이 풍성하기를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오는 교회 내의 고민과 갈등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갖길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섯 개의 짧은 구절로 이루어졌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듯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바울의 역할을 목회자의 역할로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빛을 마주한 사람들은 누구나 ‘일상의 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의 그리움은 우리의 그리움으로 연결 됩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이 애정을 쏟은 곳에 마음이 가기 마련입니다. 요즘 우리의 마음은 어느 곳에 가장 많이 가 있습니까? 교회를 구성하는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오르는 요즘이십니까? 아니면 갓 가을을 벗어난 겨울이라 가슴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리움의 대상이 떠오르는 요즘이십니까? 

 

방금 말씀 드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든 자연스레 생기는 마음과 생각, 그리움은 정말 소중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이것이 우선순위가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강제나 명령은 자주 저항의 마음을 가져오기에 잔잔한 마음으로 잔잔하게 이야기해 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하나님과 그분의 마음을 그리워하며 사시는지요? 또 ‘일상의 사도’인 우리는 얼마나 신앙의 동반자인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사시는지요? 

 

사람이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마음을 써야 하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의 마음 씀과 반복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삶의 여러 가지일들로 인해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분주함과 걱정근심으로 마음과 생각이 무겁더라도 가까이 계신 주님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대신 조급하지 않게, 찬찬히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저히 안 될 때에는 믿음의 공동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회복되면 신앙 공동체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도 회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이들) 또 나와 무관한 듯 보이나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주위의 어려운 이들마저 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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