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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 주일]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난 사람

20150614 쓰임교회 예배 설교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난 사람

 

<사무엘상 16장 1-13절>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2.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가로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길 위의 사람들

 

오늘 주님 전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칩니다. 어느 누구하나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습니다. 단편적인 예이긴 하나 사람들의 생김새만 보아도 다양함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창조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모습을 주시긴 하셨지만 동일하게 주신 선물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외모’입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외모’ 말입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린 이 외모는 절대적 기준이 있는 외모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고유하게 주신 특별한 외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외모는 서로 비교가 불가능하고 이러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시도입니다. 흔히 요즘 사회가 말하는 ‘안구정화’를 일으키는 외모와는 다른 의미의 것입니다.

 

그러나 참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선물을 자꾸만 잃어만 간다는 사실입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면 날선 눈빛으로 언제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전투준비를 해 놓은 것만 같습니다.

 

몇 일전,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아이와 손을 잡고 내려가는 한 어머니가 앞서 걸어가는 젊은 여성에게 다짜고짜 좀 빨리 갈 수 없냐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더니 그 젊은 여성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걷느라 걸음이 무척 느렸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제 앞에 걷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보고 걸어서 앞길을 막거나 걷는 속도가 느리면 답답하고 짜증이 나긴 합니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꼭 그렇게 밖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도록 날선 송곳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

 

지금을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와 모습을 취하고 있는 듯합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차갑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인식하는 한 길을 걸을 때 의도적으로라도 표정을 밝게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니, 친절하도록 노력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내면에서 기쁨과 감사가 흘러나오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날카롭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닐까요?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이들 모두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사랑받기를 원하나 사랑받지 못함이 현대인들의 표정과 모습 속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날선 시선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표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어가며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점점 자신의 외모를 혼자 책임지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새를 찾아가는 사무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사무엘상 16장에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이 처음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타락으로 하나님은 새로운 왕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왕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며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그곳에서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만난 이새의 아들은 ‘엘리압’이었습니다. 생김새와 신장이 출중했던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은 이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던 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하시며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자신은 중심을 보신다(7)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이새의 다른 아들들인 ‘아비나답’, ‘삼마’를 비롯한 일곱의 아들들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도 택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무엘은 이새에게 이들이 아들의 전부이냐고 묻자 막내가 아직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침내 양을 지키고 있던 막내가 사무엘에게 왔습니다. 성경은 막내의 모습을 묘사하기를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12)’고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막내의 이름이 바로 ‘다윗’입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하나님께서는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을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뽑았습니다.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이 대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12).’고 말입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성경에서 묘사한 다윗의 외모와 똑같아야 하나님이 택하신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윗의 빛이 붉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색채용어사전을 찾아보면 붉은색은 명백함을 나타내고 생명, 재생을 나타내기도 하며 심리적으로는 부정적인 사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다윗이 빛이 붉다고 하는 말은 그의 영혼이 맑고 편견 없이 새롭게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그의 눈이 빼어나다, 반짝인다고 하는 말은 그의 눈빛이 맑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눈빛이 맑았기에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볼 때 보여 지는 현상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빛에 잇대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눈빛 맑은 사람

 

여러분, 축구선수 이영표씨의 별명을 아시는지요? 바로 ‘초롱이’입니다. 그의 눈은 화면으로만 보아도 초롱초롱합니다. 신앙까지 좋은 이영표 선수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눈도 덩달아 맑아지는 듯 하고 또 마음까지 흐뭇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눈빛 맑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들은 세속에 떠밀리며 사느라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그 눈은 강박적으로 우리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거울’이 되어 우리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아마 예수의 눈도 맑고 깊었을 것입니다. 눈빛이 불투명한 예수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속에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가능성들을 일깨우는 눈빛이 흐리다는 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기석, <삶이 메시지다>, 포이에마, p.237-238)

 

하나님은 사람을 능력과 외모의 뛰어남으로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중심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각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순수성과 진실성을 본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난 사람이 필요한 시대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이런 다윗과 많이 닮아있으신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이와 비슷한 형상을 가졌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두운 그늘 때문에 내면의 빛을 잃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창조성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하늘의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난 사람을 몹시 찾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사람됨을 잃게 만드는 이 세상 속에서 맑은 영혼을 간직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네가 아닌 내가,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자아를 넘어, ‘너’라는 타자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꼭 투쟁과 고난의 현장으로 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물론 그곳도 우리가 꼭 가야만 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나와 가까이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터 관심을 갖고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푸름이 가득한 이 계절, 늘따스한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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