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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슬픔을 거두시는 하나님

20160124 쓰임교회 주일설교

 

슬픔을 거두시는 하나님

 

<느헤미야 8장 1-3; 5-6; 8-9절>

 

1.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3. 그는 수문 앞 광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5. 학자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서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그가 책 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스라가 책을 펴면, 백성들은 모두 일어섰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모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께 경배하였다.

 

8. 하나님의 율법책이 낭독될 때에, 그들이 통역을 하고 뜻을 밝혀 설명하여 주었으므로, 백성은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느헤미야서에 관하여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느헤미야서입니다. 느헤미야서는 그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느헤미야라는 인물의 행적을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그 과정의 중심에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인 느헤미야 8장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을 다시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문 가운데 하나로 물을 실어 나르던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수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집회 시에 많이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제사장이자 학자였던 ‘에스라’는 모든 회중이 모인 그 자리에서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그곳에서 에스라는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 소리로 율법책을 읽어주었습니다(3).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율법책을 읽었고 백성 모두는 율법책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3).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서서 율법책을 낭독하였기에 그가 책을 펼치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었고, 그가 책을 펼치면 백성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5). 우리는 당시의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 대목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선조들의 하나님이자 지금 그들과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모두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주님을 경배했습니다(6).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혹은 가깝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물론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을 듣는 족족 이해하고 받아들이진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와 같은 역할의 사람들이 필요하듯이 당시에도 모세의 율법과 그 율법을 설명해주는 이들이 필요했는데, 오늘 본문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그들이 이름이 7절에 등장을 합니다.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7)”가 그 이름들입니다. 

 

슬픔과 울음을 멈추고 

 

8절을 보면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며 모두 울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들은 왜 울었을까요? 두 가지의 생각이 가능한데, 하나는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하여 감격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겁이 나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오늘의 본문은 그들은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당시 바사 제국의 관리인이지 예루살렘의 총독이었던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들을 타일렀습니다(9). 

 

여기서 우리는 백성들이 흘린 눈물과 또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의 타이름이 어떤 느낌의 것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10절과 12절에 나타난 표현을 본다면 백성들이 흘렸던 눈물은 고향을 잃고 가족과 이웃을 잃었던 지난 삶들에 대한 애도의 눈물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비롯한 그 외 인물들이 백성들을 타이른 것은 슬픔을 씻길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는 행위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로 나눴던 행위를 통해 그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에서는 푸짐하게 먹고 마시되 본인들의 입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차리지 못한 사람들과 나눌 것을 명하고 있고, 12절에서는 이를 행함으로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눈물과 지도자들의 위로는 감사의 눈물과 희망의 위로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당시, 백성들의 지난 시간들은 ‘슬픔’이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시간은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 백성들의 포로생활 이후의 삶을 기쁨으로 채울 것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눈물을 거두어 기쁨으로 바꿀 하나님 당신을 가슴에 품게 하였습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실 당신을 신뢰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 우리네 삶이 많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치 이 어렵고 힘겨운 삶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 중 한 분이 젊은 날, 하나님과 함께 치열하게 삶을 살았지만 마음의 평화가 없었던 건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 또한 고독 속에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고, 이 땅의 어려움과 비통함의 어두움들을 회복시키실 분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긴 하지만 그 분을 향한 정직한 ‘신뢰’가 없었기에 마음은 자꾸만 거칠고 날카로워져 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생각만으로 잘 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으로 침잠하기를 멈추고 빛이신 하나님을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기가 정말 쉽지 않다면, 저는 하나님께 솔직한 표현들을 가지고 거칠 것 없이 따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따진다는 것을 불경하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이 인격적인 양반이라면 이러한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향한 ‘신뢰’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빛은 더욱 밝게 보입니다. 작은 빛을 보았다는 것은 큰 빛이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내 이웃 중 누군가 깊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에게 다가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말없이 가십시오. 나의 속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도로,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간을 가지고 말입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누군가를 돕는 손길의 과정이 이미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또 하나의 과정임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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