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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사람

20161023 쓰임교회 주일설교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사람

 

<디모데후서 4장 6-8; 16-18>

 

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17.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셨습니다.

18. 주님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구원하셔서 그분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Lumix gx9 / 20mm]

하루에 집중하며 사는 삶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집중하며 살고 계신지요? 지난 과거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예수께서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 6:34)하셨는데, 그렇게 사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오늘을 살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현재를 살아내라 말씀하십니다. 

 

디모데후서에 관하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디모데후서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가 쓴 여러 서신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서신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결연한 의지와 더불어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해 따뜻한 애정을 담아 본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디모데를 향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이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게 됩니다. 이 디모데후서도 바울이 AD66년 말에서 67년 초 로마의 한 감옥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또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여전히 믿음의 길을 걸어갈 그 믿음의 후손들을 향해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은 디모데를 향한 그의 마지막 당부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구절들을 살펴보며 그 의미를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몫을 다한 후 맞이한 평안

 

그는 먼저 체념하듯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6).” 바울은 자신의 앞에 죽음이 놓여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어떤 거부와 저항보다 수용과 인정의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7).” 사실 우리는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바울 사도가 긴 믿음의 순례 끝에 갖게 된 생각과 감정이 무기력은 아닐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울은 실패 때문에 무력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몫을 다한 후에 삶을 정리하고 있는 평안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모두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도 믿음을 지킨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를 둘러싼 감옥이라는 상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소, ‘싸움과 경주’

 

사실 바울의 이 말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소는 ‘싸움’과 ‘경주’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이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복 받고 만사가 형통(!)한다고 많은 교회들은 외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교회는 당연히 세상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참 슬픈 현실이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교회는 세상과 어떠한 마찰도 없이 너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과도 잘 지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선한 싸움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달려가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경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다 무엇을 찾았다하여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 평생을 트랙삼아 달려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몫인 것입니다. 바울의 이 한 마디에 신앙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

 

이제 바울 앞에 선물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8).” 바울은 믿음의 반석 위에 확고히 서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수고한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을 마련해 주신다고 그는 말합니다. 면류관은 무엇을 말합니까? 면류관은 왕의 즉위나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등장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온 바울을 위해 왕의 즉위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줄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울 스스로 그런 확고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과 깊이 교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이 면류관은 바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의 여정의 결과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라 그는 말했습니다. 

 

고독한 삶, 그러나 확신에 찬 바울

 

16절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에, 내 편에 서서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빕니다(16).” 그의 삶은 고독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통해 그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입장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돌아섰을 때도, 또 억울한 일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자신이 세운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오해를 살 때 외로웠습니다. 그 순간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혼자였던 순간을 회상하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오해했던 사람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스스로의 허물이 돌아가지 않기를 또한 바랐습니다. 중요한 건 바울의 삶이 고독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힘만으로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음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서셔서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하여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모든 이방 사람이 그것을 들을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셨습니다(17).” 사자의 입에 갇힌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주께서는 바울을 지켰습니다. 그를 통해 하실 일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마음과 늘 접속되어 있었기에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이러한 확신을 갖고 더 이상 악한 일에나 어려운 일에 사로잡히지 않고 주님 곁으로 옮겨가게 될 것(18)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영원한 현재를 사는 우리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제가 오늘 설교 서두에 여러분께서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충실히 누리며 사느냐고 물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온전히 현재에 집중해서 살기보다, 지나온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며 삽니다. 그래서 오늘의 즐거움을 유보하며 삽니다. 

 

혹시 지나온 삶 중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 있으십니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어떤 기억이 우리를 힘 있게 사로잡고 있다면 우리가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단순히 즐거웠다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그 순간 집중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일러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그는 현재를 사랑했기에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순간은 생동감 있게 현재의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현재도 끊임없이 과거로 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에게 생동감 있는 과거를 선물하고 싶다면 지금, 오늘,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이(정희진)는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소유하려는 것도 권력욕이라 했습니다. 

 

바울도 영원한 현재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지난 과거의 시간들이 생동감 있는 현재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영원한 현재를 살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를 따르기로 한 우리의 삶 앞에 ‘싸움’ 이 놓여 있다는 것과 또 우리의 삶은 ‘경주’와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 사이에서 오는 끊임없는 선한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계속해야하는 ‘경주’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더불어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홀로도 걸어야 하는 ‘고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예수를 따르는 길이 이렇게 힘겹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길을 걷는 자들을 위해 때에 따라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의의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늘 우리 곁에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넘어져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난한 삶의 여정을 받아들이며 즐거이 맞이할 때 우리는 영원한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며 홀로 또 더불어 그 길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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