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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하나님의 영에 이끌린 사람

20160515 쓰임교회 주일설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린 사람

 

<로마서 8장 14-17절>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Lumix gx9 / 20mm]

가장 긴 절기, 성령강림절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력 가운데 27주 동안 진행되는 가장 긴 절기입니다. 모두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으로, 절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분이 사셨던 삶의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성령강림절은 예수께서 부활한 이후, 그가 이 땅에 보내신 성령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거룩한 영, 보혜사)과 밀접한 시간을 보내는 절기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어떤 분인지, 성령의 역할과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 가운데 하나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에 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로마서 8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선교활동의 막바지였던 AD55년 말 혹은 56년 초 고린도에서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서신은 바울이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고린도에 있는 가이오의 집에서 더디오에게 기록하게 했고(롬 16:22-23), 이 서신을 로마교회에 전달한 사람은 집사 뵈뵈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롬 16:1-2).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나 목적은 네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스페인 여행을 위해서 로마교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충돌에 대비해 로마교회의 기도와 지원을 받기 위해서이고, 세 번째는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주의 적대자들의 공격과 그 영향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로마에도 있기 때문에 그 공격에 대하여 자기를 변호하고 동시에 자기 신학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교회 안에 있는 특별한 문제들에 해결책을 주기 위해서 그는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조경철, 『신약성서가 한 눈에 보인다』, p.187)

 

이러한 배경 가운데, 로마서 8장인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현실’에 관한 부분으로 로마서 전체 가운데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성령’ 즉, ‘하나님의 영’의 역할에 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는 ‘성령’

 

오늘 본문 첫머리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14)’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이전 상황과 배경이 어떠하든지 이제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지난 과거의 것들은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것이 새로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서로 간에는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하고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하나님의 영’은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이라고 소개하며, 이 영을 통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15). 수표교교회 담임 목사였던 김고광 목사는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고 하는 이 놀라운 자리의 변화, 이 사실을 감격스럽게 간직하지 못함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생명력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복음성가에도 반복되어 등장하는 이 ‘아바 아버지’라는 말은 고대 희랍어(헬라어) ‘아빠 호 파테르(𝞐𝞫𝞫𝞪 𝞸 𝞹𝞪𝞽𝞰𝞺)’가 그 어원입니다. ‘아빠’(Abba)라고 하는 이 말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부르던 예수님의 용어입니다.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누가복음에 단순히 ‘아버지여’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 말은 ‘아빠’라고 하는 아람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아빠’라고 부르는 것과 그 내용과 발음 면에서 동일합니다. 굉장한 친근함의 표현인 것이지요. (김고광, 『살아 있는 로마서』, p287-288)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은 ‘나는 곧 나’라고 밖에 표현될 수 없었던 그 분을, 그리고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어 그분을 그저 ‘하늘’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존재가 우리의 가장 친근한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이런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전형적인 노예사회에서 한 나라의 왕이 가장 하층민의 사람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거나 친구가 되어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적절한 예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이 사건은 실로 엄청난 혁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로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16)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건너 받게 될 영광의 ‘상속’

 

하지만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런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고난’도 받아야 함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의 조건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조건은 우리의 헛된 상속물에 대한 예방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우리가 이 구절만 따로 떼어 읽게 되면 그 상속물이 우리의 상상대로 흘러갈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의 상속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 상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진리 즉, 사랑을 통해 누리는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통해 주어진 평화를 누리자면 우리는 어떠한 과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과정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고난’이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통해 받게 될 몸과 마음의 곤란함과 난처함들 이겠지요. 

 

하나님의 영에 이끌린 이들을 위한 선물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다 ‘지금이다’하며 벌주기를 좋아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향하고 계시고, 또 나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내가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분이십니다. 또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그 친근함으로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존재는 어떠합니까? 경계선이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다가가고, 또 다가오는 그런 관계가 아닌지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 예수가 걸었던 길의 길동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영에 이끌린 사람들이고,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주 친근한 대상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하여 어려움과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길을 따르다 마주치게 될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중한 상속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이미 상속자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편에 서서 마땅히 손들어줘야 할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시기 바랍니다. 마치 우리가 자처하는 듯 해 보이는 고난이 더 유익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이 시작됐습니다. 11월까지 지속되는 이 절기에, 뜨거움과 차가움보다는 따스함과 시원함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과 친밀하게 지내는 우리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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