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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삶을 지속하는 힘, '작음'

20180617 쓰임교회 주일설교 

 

삶을 지속하는 힘, ‘작음’ 

 

<마가복음 4장 26-34절> 

 

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27.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32.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이와 같이 많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다.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직선의 말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가득하길 빕니다. ‘직선의 말’은 너무 날카로워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대화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직선의 말 다시 말해 너무 정확한 말, 올곧은 말을 할 때는 에두르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빈틈없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상대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에두른 방식으로 여러 번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직선의 말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평소 대화를 나눌 때나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는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를 전하기보다 상대 스스로 해답을 찾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직선의 말은 상대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어려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올곧은 말은 상대의 마음에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의도였을지라도 말한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기분이 나쁘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질문’과 ‘비유’의 방식 

 

그럼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요? ‘질문’입니다. 질문은 받은 내가 상대방에게 역으로 질문을 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지금 네가 ~하다고 이야길 했는데, 지금 네 마음이 ~다는 거니?”라든가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등의 질문으로 받은 질문을 다시 돌려줄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 주로 다루는 기법이지만 일상에서 적용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방금 드린 말씀은 1:1 대화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어떤 사실을 다수에게 전해야 할 때는 어떤 방식이 가장 적합할거라 보십니까?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성경에는 주로 이 방법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 설명방법인데, 무엇일까요? ‘비유’입니다. 비유는 스스로 깊이 생각하게 해서 답을 찾아가게 하는 아주 지혜로운 설명방법입니다. ‘질문’을 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비유’나 ‘질문’은 스스로 사고하는 수고를 주지만 깨달음이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지혜를 전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한 예수는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하늘진리를 설명할 때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비유 

 

오늘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복음서에는 여러 가지 ‘하나님 나라’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겨자씨 비유, 밀과 가라지 비유, 밭에 감춘 보화의 비유, 누룩을 넣은 여인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오늘 본문은 씨 뿌리는 자와 겨자씨에 관한 비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26-29).” 

 

어떻습니까? 이 비유를 들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이 맞다 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특별할 것 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곳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는 곧 순리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섭리를 연상시킵니다. 

 

씨앗을 뿌리는 행위의 중요성 

 

그런데 여기에는 감춰진 중요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 그는 씨를 뿌렸던 사람입니다. 움직임이 없는 곳엔 파장은 일지 않습니다. 호숫가에 돌을 던져야 물 위 동심원을 구경할 수 있는 법이죠. 싹은 씨를 뿌려야 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렸던 사람이 있어야 싹은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행위 없이 가만히 앉아 싹이 나기만을 바라면 절대 싹은 자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볼 수 없습니다. 선행되는 작업이 있어야 사건은 발생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씨를 뿌리기만 한다면, 우리가 알던 모르던 ‘사랑의 씨앗’을 뿌렸다면 그 이후의 몫, 이후의 과정은 모두 하나님께서 담당을 하십니다. 그것이 기쁨의 씨앗이든 아픔과 희생의 씨앗이든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심은 씨앗 즉, 선한 행위는 반드시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린 사람은 싹이 자라는 것을 보지만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그다음에는 낟알을 냅니다. 그리고 그것에 열매가 맺히면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말은 선한 행위를 한 뒤에 다시 뒤도 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때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우리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때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선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잘못 심은 씨였다면 하나님께서 다시 깨닫게 하실 것 또한 믿어보는 것이죠.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밭에 씨앗을 뿌린다면 그 뒤에 하나님의 보살핌과 도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작음의 소중함, 겨자씨 

 

서두에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 한 가지를 더 알려줍니다.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30-32).” 

 

인터넷 <교회용어사전>에 ‘겨자씨’를 검색해 보면 이런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겨자씨’는 ‘갈릴리 지방에서 많이 자생하는 십자화과(科) 식물의 씨로 성장하면 키가 4-5m나 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이 ‘겨자씨’는 예수께서 살던 갈릴리 지방에 많이 자생하는 식물이었고 씨앗의 크기는 매우 작았지만 성장하면 몰라 볼 만큼 커지는 그런 식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겨자씨’를 ‘하나님 나라’ 비유로든 것은 방금 저희가 나눴던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설명의 연장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씨 뿌린 사람’은 자신이 뿌린 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작은 시도는 결코 크기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오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페터 제발트의 책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를 보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공이란 자신의 온갖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작은 것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느님도 보잘것없는 것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 셨습니다. 저 외딴 동네, 작은 마구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문학의숲, p.215 

 

‘작은 것’이 소중한 것은 어쩌면 그 안에 인생의 진리, 삶의 아픔이 깃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에 ‘작은 것’에 귀 기울이면 귀 기울일수록 우리는 맑아지고 그 맑아짐 속에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석과불식’과 ‘겨자씨’ 

 

성공회대 석좌교수였던 신영복 선생님은 자신의 생전 마지막 책인 <담론>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주역>에 등장한 ‘석과불식’이라는 말에 관한 소개와 더불어 이러한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석과불식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생략) '석과불식'은 한 알의 작은 씨 과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씨 과실은 새봄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영복, <담론>, 돌베개, p.420-423

 

‘석과불식’은 한 알의 ‘씨 과실’은 봄을 오게 하는 ‘싹’이 되며 이 싹은 ‘나무’가 되고 이 나무는 곧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흐르게 됨을 알려줍니다. 작은 씨를 보며 미래를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 ‘석과불식’이 예수의 ‘겨자씨 비유’와 결코 다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도와 행동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하늘나라’와 다릅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십니까?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음 이후 가게 되는 그 나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우리의 도움 없이는 절대 도래할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나라를 지금 이곳에 오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 이 나라를 도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하늘의 은총과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도와 행동을 양손에 쥐어야 합니다. 하늘의 도움을 구하면서 앞으로 한발자국씩 내딛는 겁니다. 물론 좋은 기도는 행동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기도를 위한 기도는 없고 행동을 위한 행동은 없습니다. 기도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제공하고 움직이는 힘은 기도를 통해 방향성을 잡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도움 없이 하나님 홀로 이룩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우리의 욕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나라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은 몫은 자신이 거하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기와 무관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예수께서 특별히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작은 손길과 작은 걸음, 작은 기도가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지속하게 하는 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됩니다. 

 

‘작은 것’을 택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우리 모두의 여정 위에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Bible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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