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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실수를 통해 배우는 삶

20180610 쓰임교회 주일설교

 

실수를 통해 배우는 삶

 

<사무엘상 8장 4-20절>

 

4.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서,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5.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6. 그러나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해 달라는 장로들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7.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8.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9.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10.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11. "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12.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13.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14.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당신들이 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16. 그는 당신들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17.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18. 그 때에야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9. 이렇게 일러주어도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20.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실수하며 사는 인생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가득하길 빕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실수를 합니다. 여러분은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실수에 대해 관대한 편이십니까? 혹은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나 자신에 대한 실수에는 엄격하십니까? 

 

우리는 육체를 지닌 인간이기에 실수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겐 남은 몫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와 다른 하나는 스스로 그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큰 실수가 없었기에 조용하고 무난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게 꼭 ‘좋은 일이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저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었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그 버둥거림이 스스로를 엄격히 다루는 잣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실수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꽁꽁 묶어 둘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보통 자신이 범한 실수를 보고 우리는 이런 판단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실수를 했지?’, ‘이게 실수가 맞는 걸까?’ 등의 생각이 실수를 한 시점부터 자신을 자꾸만 쫓아다닙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두고 후회하며 스스로를 학대하기 마련입니다. ‘성찰’은 삶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지만 정도 이상의 과도한 ‘자책’은 존재자체를 해치게 됩니다. 

 

그럼 ‘실수하는 인간’으로써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신 걸까요? 실수와 같은 것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결부되어 있기에 명확한 답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이 문제를 두고 성경의 지혜를 구해볼 순 있을 것입니다.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

 

그 지혜를 사무엘상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사무엘상/하’는 제목에서 드러난 인물인 ‘사무엘’과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된 ‘사울’,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에 관한 이야기 묶음입니다. 이 가운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왕이 세워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 보죠. 

 

처음 이스라엘은 왕이 다스리는 왕정 혹은 군주정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중심이 되는 국가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오던 이스라엘에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이 제사장 중심의 국가가 아니라 왕정 국가를 원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필요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손에 잡힐만한 대상이 있을 때 안정감을 갖습니다. 때론 그 대상이 어떤 종류의 대상인지 깊이 고려되지 않은 채 선택되기도 합니다. 

 

이 에피소드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삼상2:11)이자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내던 사무엘은 늙었고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돌볼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인 ‘요엘’, ‘아비야’은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일했는데(삼상8:2), 성경은 기록하길 그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백성들 사이에서 현명한 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미래가 걱정이 된 백성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답답한 심정으로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사무엘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삼상8:5)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그대로의 무거운 심정을 하나님께 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하는 일마다 그렇게 하여,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더니, 너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 주어라." (삼상 8:7-9)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백성들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에 뭇사람을 참 자유하게 할 수 있음을 아셨던 하나님은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백성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왕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백성들은 그때까진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당신들이 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그는 당신들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삼상 8:11-18)

 

사무엘의 이 말은 왕정 국가, 군주 국가를 채택한 나라가 맞이하게 될 전형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왕이 세워진 국가는 왕을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고 그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많은 헌신이 발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현명한 왕이라 해도 백성들의 어느 정도 헌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도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답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삼상 8:19-20) 

 

백성들의 마음은 완고해 보입니다. 이럴 땐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경험’이 주는 삶의 선물

 

오늘 본문 이후를 보면 결국 사무엘에 이어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고 두 명의 왕이 뒤를 잇고 나서야 이스라엘 왕정정치는 끝나게 됩니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며 그 군주정치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무엘을 통해 말씀을 하셨죠.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많은 백성이 노예의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자신들이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테지만 그때에는 자신이 응답하지 않을 것(18)이라고 말입니다. 

 

설교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한 판단과 행동이 실수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고 주로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실수가 일어난 후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실수를 돌이킬 기회를 주지 않는 그런 칼 같은 분이실까요?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실수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응답의 방식을 달리 하실 거라고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실수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경재 교수는 <폴 틸리히 신학연구>라는 글에서 ‘고난의 경험’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하죠. 

 

“무엇인가 새롭고 예견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속으로 꿰뚫어 들어온 때요, 새로운 그 무엇에 의해 그의 삶이 바꾸어지고, 그 새로운 것 때문에 행동해야 할 새로운 무엇이 도래하는 결정적인 때의 경험” (김경재, <폴 틸리히 신학연구>, p.34)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 <11분>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극한의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운다고 말입니다. 

 

“나 역시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본 적이 있어요. 사드 후작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은 그를 극한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이라고 말했죠. 우리는 바로 그런 극한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게 되죠.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용기를 요구하니까요.” (파울로 코엘료, <11분>, 문학동네, p.196)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또 잃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은 잃을지언정 우리의 정신(mind)은 잃는 법이 없습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줍니다.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긴가민가한 일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는 문제들은 더 밀어붙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다른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막는 말은 한마디도 안 하나요? 

 

"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함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될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기자님 영혼의 빛은 어둠보다 더 강해요. 그렇지만 깨닫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불륜>, 문학동네, p.212)

 

물론 끝까지 가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싶다면 그리고 무언가 내 안에 달라붙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합니다. 그래야 아쉬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드시 어떤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동행을 요청해 보며 한 발씩 내디뎌 보는 겁니다. 

 

실수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법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웁니다. 무엇을 경험하기 이전에 좋은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지혜를 넘겨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실수를 하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실수를 통해 우리에게 깨달음이 온다는 글귀 하나를 읽어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동일한 저자의 동일한 책 <11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다. 하지만 실수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방식 아닌가. 세상은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위험을 무릅쓰지 말라고? 삶에게 용기 있게 '그래'라고 말 한 번 못 해보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라고? ​ 

 

열한 살 때, 소년이 다가와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이미 실수를 저질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때로 두 번째 기회란 아예 없기도 하다는 것, 세상이 주는 선물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파울로 코엘료, <11분>, 문학동네, p.44-45) 

 

한 소녀는 망설임으로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좋은 기회’라는 것이 미지의 것이기에 우리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기꺼이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소녀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기 위해 즉,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더 깊이 체험하기 위해 용기를 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 사무엘의 뒤를 이어 왕이 세워지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왕이 통치하는 국가는 반드시 힘의 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부자유한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계속된 왕정 정치의 나라가 되지만 어쩌면 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다른 방식을 통해 응답하셨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무뎌진 삶에 활력을 주는 방법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의 활력’이라는 것이 꼭 기분 좋은 일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힘겨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다시 생기 있는 삶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큰 호흡으로 매 선택 속에 주님을 모시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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