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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20180603 쓰임교회 주일설교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2:23-3:6>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좋은 일이 좋은 일이 되도록 하라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함께하길 빕니다. 날씨가 더워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주위에서 누군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일의 결과가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본인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으십니까?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없애려고 했던 것을 오히려 자신이 조장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상에는 도끼로 악의 뿌리를 내려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악의 가지를 치는 사람은 천 명이 있다고 하겠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주는 사람은 자기의 생활 방식을 통해서 그가 없애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불행을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조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사람은 노예 한 명을 판 대금으로 노예 아홉 명에게 일요일 하루만의 자유를 사주는 경건한 노예 농장 주인과도 같은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말이 좀 어렵게 쓰여 있습니다만,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줬습니다. 그럼 가난한 사람은 그 순간을 살아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굶주림에 처하게 될 테고 그럼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구제의 손길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결국 가난한 자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른 채 악의 가지를 치는 천 명의 사람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소로우는 방금 그 책에서 먼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의미에서는 '좋은' 일은 나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며, 내가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실상 이런 말을 한다. "좀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려 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시작하시오. 미리 생각했던 친절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시오." 그러나 내가 그들과 같은 말투로 설교할 입장에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먼저 착한 인간부터 되시오."라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물론 이 말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선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선한 일 혹은 좋은 일을 할 때, 나도 눈치채지 못한 스스로의 의로움에 사로잡혀 내가 돕고자 하는 일의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조심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선뜻 도와주겠다고 앞장서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과 의도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본문 말씀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거나 또는 신앙생활을 하며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사랑’을 근거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걷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밀로 가득 덥혀 있어서 밀을 옆으로 치워내지 않으면 걷기 힘든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으로 밀을 걷어내며 길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근처 어딘가에서 예수일행을 지켜보던 바리새파 사람 하나가 예수께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24)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예수는 답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에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 주지 않았느냐?”(25-26) 다윗의 이 이야기는 사무엘상(삼상 21:6)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던 중에 있었던 이야긴데, 예수께서는 이 제1성서의 이야기를 근거로 말씀하시고 나서 자신의 입장을 요약한 한 마디를 던지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27-28) 

 

손 오그라든 자의 치유

 

말을 마친 예수와 그 일행은 회당으로 향했습니다. 회당에 들어간 예수는 회당 한쪽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를 시기하던 자들은 예수를 고발할 꼬투리를 잡고자 늘 그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었고 회당에 들어선 예수가 처한 상황이 그를 고발할 좋은 빌미가 될 거란 생각에 그 상황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육신의 일은 뭐든 멈춰야 했던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어떤 판단을 내리셨을까요? 

 

예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3) 그리고 이어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4) 이 질문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한 질문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질문을 들은 사람들 모두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안식일’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알고 계신 예수께서는 분노하며 그들을 쳐다보았고 그들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쭉정이만 남고 알곡은 사라진 하나님의 법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 말씀하셨고 손을 내민 그 사람은 치유를 경험합니다. 

 

안식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여러분,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주일’ 곧, ‘주님의 날’이 곧 ‘안식일’입니다. 기독교 사전 KCM이 ‘안식일’에 관해 간략히 잘 정리해 놓았기에 읽어드려 볼까 합니다. 

 

“안식일은 첫째,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이 이 날을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6일간에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쉬셨다(창2:1). 둘째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날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에게 복 주시는 날이다. 즉, 육신은 육적인 일에서 해방되고, 영혼이 영적인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준비한 축복을 받는 날이다. 이날에 육적인 노동을 하고 영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셋째로, 거룩한 날이다.”

 

한 마디로 ‘안식일’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육체의 노동에서 벗어나 쉼을 가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창조의 마지막 날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안식일’은 ‘희년’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쉼 없이 일해야 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혹은 노예들을 위해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규칙이나 규율이었습니다. 

 

가톨릭 신학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은 그의 책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식일의 목적, 이유, 의도는 매주 모두에게 – 집안 식구들, 자녀들, 노예들, 가축들, 이민자들 – 똑같은 휴식을 주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안식이 아니라, 안식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존 도미닉 크로산,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 

 

즉, ‘안식일’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평등한 권한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당시 기득권이나 혹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일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안식일’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 것입니까? ‘안식일’의 의미에는 하나님의 어떤 마음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존재 자체로의 소중함을 드러내 보이는 사건이 바로 ‘안식일’ 사건인 것입니다. 그랬기에 ‘안식일’에는 모두가 쉼을 누리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습니다. 

 

그런데 만약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행위 즉, 무조건적인 ‘쉼’이 오히려 안식일이 지닌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이 딜레마를 오늘 본문에서 해결해 내셨습니다. 형식에 사로잡힌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참 진리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죠.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이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안식일’이 결국 몸의 쉼을 통해 영의 쉼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육체의 고통으로 인해 온전히 쉼을 누리지 못하는 자를 영의 쉼으로 이끄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기뻐하고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행하신 사랑의 치유 행위도 단순히 노동의 차원이며 그저 그런 일로 보는 비뚤어진 그 마음들은 이 상황 앞에 답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담긴 하나님의 참 마음을 망각한 자들은 이 상황 앞에 어서 답해야 합니다. 과연 누가 진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지를 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로마서 7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롬 7:15) 

 

요즘 저는 이 말씀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시기심과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예수를 반역자로 몹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어겼다는 핑계를 대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하나님의 법 즉, 율법에 담긴 그분의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셨고 무엇보다 삶으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살아내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길을 예수와 함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6월입니다. 여러분, 저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그 의로움이 오히려 악의 가지치기를 하는 행위는 아니었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동참 하겠습니다. 선한 일, 좋은 일을 하겠다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분별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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