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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자신의 인생에 담긴 사랑

20190203 쓰임교회 주일설교

 

자신의 인생에 담긴 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13절>

 

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감동을 주는 말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감동시키는 말은 어떠한 말들입니까? 너무 질문이 뜬금없나요? 지난 시간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감동시켰던 말은 주로 어떠한 말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이 느낀 진심을 말하기보단 상대에게 누가 되지 않을 말 혹은 반응을 골라 그것을 표현하며 지냅니다. 물론 이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상투적인 표현들은 그것을 듣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어느 정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세상을 바꿀 위대한 생각처럼 들리던 말이 아무 감정 없이 입으로만 내뱉는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특히 자기계발서와 성공을 부추기는 책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이고 명석한 말일지라도 사랑 없는 말은 우리의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말은 사랑이 담긴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만이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쓴 책을 거의 다 읽어봤고 지금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습니다. 최근 독서모임 준비를 위해 그의 책 <불륜>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소설 속에 풀어놓은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책의 내용을 본문 해석과 버무려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 사도는 ‘사랑’을 ‘예언’과 비교했습니다(1). 그리고 ‘신비에 대한 지식’, ‘믿음’, ‘자선’과도 비교를 했습니다(2-3). 바울은 ‘사랑’이 ‘믿음’보다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코엘료는 ‘믿음’은 우리를 더 큰 ‘사랑’으로 이끄는 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사랑’이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주는 ‘자선’보다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건 또 왜 그럴까요? ‘자선’도 ‘사랑’의 한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죠. 전체는 항상 부분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지금 당장 나에게 보여 지는 그의 반응만 보고서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 혹은 살아온 역사를 함께 고려할 때라야 상대에 대한 이해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자꾸 우리의 눈이 나무를 볼 때 숲 전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선’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사랑’이 이용하는 많은 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것처럼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냥 지나치는 것보다도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동전을 건네고 나면, 잠깐이지만 구걸하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코엘료는 말합니다. 진정으로 구걸하는 자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훨씬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혹은 그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동전을 주지 않는다면, 구걸하는 자의 가난에 대한 죄책감이 우리 안에 있는 ‘진정한 사랑’을 일깨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라며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사랑’과 ‘희생’을, ‘사랑’과 ‘순교’를 비교했습니다(4-5). 물론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기자가 직업인 소설 속 주인공은 예술가나, 사회사업가, 의사, 학생, 공무원 등을 인터뷰할 때마다 항상 묻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일하나요? 목표가 있나요?” 어떤 이들은 가정을 일구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경력을 쌓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며 다시 물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인류를 위해 일하고자 소망하는 모든 이에게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을 잊지 말라고 청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3).” 

 

자신의 인생에 담긴 사랑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에 담긴 사랑’입니다. 작가는 그의 경험을 빌어 이러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직 자신의 인생에 담긴 사랑만이 진정한 보편 언어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중국 사람과도 인도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말입니다. 작가는 어렸을 때 여행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당시 모든 학생의 통과 의례였습니다. 그는 부유한 나라에도 갔고 가난한 나라에도 갔습니다. 그 나라 언어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어딜 가나 말없는 사랑의 웅변으로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재작년 산티아고 순례를 갔을 때 비슷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영어도 매우 짧고 더구나 스페인어,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독일을 포함해 세 개의 나라를 다니며 내가 전하고자하는 마음을 한정된 언어에 담아 몸과 마음으로 전하자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메시지는 내가 인생을 사는 ‘모습’에 있는 것이지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빛 속에 숨은 무지개 색을 드러내는 프리즘처럼, 우리에게 사랑의 무지개를 보여줍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날마다 듣는 미덕들, 우리가 삶의 매순간 실천할 수 있는 미덕들입니다. ‘인내, 친절, 관용, 겸허, 공손함, 이타심, 온화함, 정직, 진실성’ 

 

이 모든 선물은 우리 자신과 나날의 우리 삶과, 오늘 그리고 내일과 관계있을 뿐, 영원과는 큰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만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냈는가를 말입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에겐 어떤 ‘힘’이 있습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자신을 더욱 솔직하고 진솔하게 만듭니다. 나를 이끄는 것에 자신을 열어두시기 바랍니다. 두려워말고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나를 일깨우는 사랑이, 하나님의 초대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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