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Note / 잠언 (5)] 다시 발견한 주님의 마음

2024. 6. 5. 13:38Note

20240606 청파교회 새벽설교

 

다시 발견한 주님의 마음

 

<잠언 29장 19-20절> 

 

19. 말만으로는 종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으니 다 알아들으면서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20. 너도 말이 앞서는 사람을 보았겠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바랄 것이 있다.

 

 

의인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잠언 29장입니다. 잠언 29장은 <솔로몬의 잠언>에 속한 장입니다. 잠언 29장에도 다양한 잠언의 말씀이 등장하는데, 오늘 우리는 그 가운데 몇 가지의 말씀을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잠언 29장 7절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말합니다.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쯤은 못 본 체한다.” 의인과 악인의 대립은 잠언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아는 자이고,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은 못 본 체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의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보여줍니다.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악인이라는 말입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무게감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본능이라는 감옥에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가 언제이냐면 바로 타인의 사정을 헤아릴 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능을 거스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입니다. 특히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은 더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햇빛

 

이어서 살펴볼 구절은 13절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다 함께 살고 있으나, 주님은 이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신다.” 이 13절의 말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잠언을 비롯해서 성경이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는 의인이 받을 복악인이 받을 벌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벌을 주신다는 게 성경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러나 방금 읽은 13절은 이러한 경계를 허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저자 마태는 말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 5:45) 저자 마태가 잠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메시지가 전하고자 하는 분명합니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것들은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대상이 벌 받기를 바랍니다. 종교나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잠언의 말씀은 우리의 이러한 바람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이나 착취하는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될만한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4장의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약 4:12)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와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야고보는 서로 비방하는 사람들을 향해 심판의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해, 만약 내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비판한다면은 내가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잠언의 말씀이나 마태복음의 말씀은 악인에 대한 판단과 정죄의 권한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알려줍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단 하나의 행동

 

이어서 살펴볼 구절은 19-20절입니다. 잠언의 저자는 말합니다. “말만으로는 종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으니 다 알아들으면서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너도 말이 앞서는 사람을 보았겠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바랄 것이 있다.” 이 말씀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 말씀은 마치 가장 좋은 교육은 내가 직접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려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 대상이 나의 가족일 수도 있고, 내가 만나는 이웃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대상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가르침이든 말로만 하는 가르침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말보다 단 하나의 행동인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인용한 김에 야고보서의 말씀 한 군데를 더 살펴볼까 합니다. 야고보서는 다른 서신들과는 다르게 믿음보다 특히 더 행동을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있는데, 말로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먹으라고 말하면 그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합니다. 행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가 한 말이나 믿음은 열매를 맺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머리만 커지고 몸은 왜소해져 버린 신앙인들에 대한 경고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잠언 29장

 

오늘 우리는 잠언 29장의 말씀 가운데, 세 군데의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7절의 말씀에서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인데, 자기중심적인 틀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다른 이들의 사정을 헤아릴 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자는 이 어려운 일을 해 내거나 해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이 자리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13절의 말씀을 통해, 잠언의 저자는 악인에 대한 판단과 정죄의 권한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신앙인의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20절을 통해 우리는 행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믿음은 열매를 맺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늘 잊고 삽니다. 다시 기회를 얻었으니 말만 앞서기보다 단 하나의 작은 실천이라도 해 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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