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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그대를 기억하며 회상합니다

홍수 속 마실 물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과되지 않은 SNS 홍수 속에 급수가 높은 물도 여럿 있나 봅니다. 지금, 제 상황을 돌아보게 만드는 맑은 물을 만났습니다. 몇 개의 문장과 제 상황을 엮어 볼까 합니다. 기사의 전문은 주소로 남겨 놓겠습니다. 

 

 

상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애도의 기술’

애도는 고통스런 노동이다.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억하고 회상하려는 치열한 노동을 통해 우리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남편과 사별한 젊은 엄마 A씨는 ‘철의 여인’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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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짧게 <위로>라는 글을 쓰긴 했습니다만, 오늘 이 글은 그때의 글의 연장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우리는 이별을 맞이한 이들에게 아주 심플하고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예를 들면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야' 같은 말들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저도 그랬거니와 당장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 대부분은 이러한 위로가 굉장히 뜬구름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힘내'라는 말만큼 힘 안나는 말도 없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상대적이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상실의 아픔은 잊힐 테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제대로 잊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사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게 흔한 위로의 말이지만, 틀렸다. 상실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애도라는 힘든 노동, 즉 애도작업을 통해서 그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때 잊히는 것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상실은 자아가 사랑하는 대상에 투자한 리비도가 대상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부재하는 대상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맹 박사는 “애도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떼어내는 것”이라며 “이것은 죽은 대상을 다시 죽이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한다.

 

상실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아니라 '애도'라는 보이지 않는 힘든 노동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로이트는 '상실은 자아가 사랑하는 대상에 투자한 리비도(성충동, 욕망)가 대상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부재하는 대상에 붙어 있기에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맹정현 박사는 '애도'는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떼어내는 것이라 말하며, 이것은 곧 죽은 대상을 다시 죽이는 일이기에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이곳에 없는 이별한(상실한) 대상을 소환해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는 말인 듯합니다. 

 

#. “애도란 장례를 치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죽음에 대해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감정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에 대한 죄의식, 증오 등이 표현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한테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애도의 작업을 회피한다면 10년이 지난 후 그 상실의 경험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는 겁니다. 과거의 상실이 어느 순간 증상을 만들어내면서 삶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반드시 되돌아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별이든 죽음이든 어떠한 상실의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장례식이 있는 것도 애도의 연장선이며 또 장례의 기간이 며칠씩 걸리는 것도 애도의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맹박사는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감정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애도의 작업을 회피한다면 10년이 지난 후 상실의 경험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고요. 그때 우리가 되돌아가는 작업을 하지 않으려면 '상실의 때'에 충분히 '애도'해야 하겠지요. 


 

#. 리비도의 철회는 역설적이게도 기억을 통해 이뤄진다. “잊으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잊히지 않죠. 대상이 리비도를 움켜쥐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그 대상을 기억하고 회상하세요. 언어를 통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언어의 차원에서 함께 표출돼야 합니다. 계속 이야기하세요.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기억하면서 리비도를 고갈시키는 겁니다.”

 

#. 통곡은 애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지금은 울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며,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애도의 노동으로는 애도일기를 쓰는 것 외에도 스크랩북을 만들거나 포토앨범을 꾸미는 것도 좋다. 그가 즐기던 음악이나 봉사활동을 물려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안에 사진 액자로 ‘그의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도 좋다. 슬픔을 환기시킬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속해야 하는 삶 속에 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지지대가 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랑했던 이의 상실을 삶 속에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럼 이별을(상실을) 경험한 이들은 어떻게 그/그녀를 잊을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어떻게 리비도의 철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그 대상을 기억하고 회상하세요. 언어를 통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언어의 차원에서 함께 표출돼야 합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세요.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기억하면서 리비도를 고갈시키는 겁니다.' 

 

방금 문장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또 그것을 이어받아 쓰는 지금도 결국은 그/그녀를 잊어야 한다는 게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그래서 요즘, 저는 만나는 사람들과 이별(상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글을 쓰고, 글을 읽고,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을 이어받아 듣는 것은 그/그녀를 기억하고 추억을 회상하는 일말의 시도 인 셈입니다. 저는 이 글을 접하기까지 저의 이러한 시도가 리비도를 고갈시키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불쌍한 자기 연민으로 여겼을 뿐이었지요. 

 

#. 애도에는 단계가 있다는 통설이 널리 유통되고 있지만,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처럼 그 삶에 맞는 각자의 애도의 방식이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처럼 6개월 만에 집약적으로 치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애도의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생략) 모두 살아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애도의 방법과 기간을 표준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론은 중요하지만 그 이론에 모든 삶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저마다의 삶이 있는 것처럼 그 삶에 맞는 각자의 애도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별(상실)을 경험한 어떤 이는 그 '애도'의 시간이 짧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평생을 두고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온 삶의 역사가 다르기에 애도의 방법과 시간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역사로 누군가의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 애도는 고통스러운 노동이다.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기억하고 회상하려는 치열한 노동을 통해 우리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지금이 애도의 시간이겠지요? 앞으로 이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당신과 함께 했던 휴대폰 속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애도'의 시간은 소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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