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Note] 사랑을 향한 방향성

2015. 8. 9. 15:40Note

201507809 쓰임교회 주일설교

 

사랑을 향한 방향성

 

<에베소서 4장 25-32절>

 

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Lumix gx9 / 14mm]

약속을 지키는 것의 어려움

 

오늘 이렇게 쓰임교회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며 살고 계십니까?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힘이 세고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 약속을 잘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만큼 약속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바울의 가르침

 

오늘 우리가 함께 읽어본 에베소서 말씀은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써 지켜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 열거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에베소서는 스스로 바울이 저자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바울이 2년 이상 관계를 맺어온 교회라고 보기에는 그의 말투와 서신의 분위기가 좀 낯설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서신의 저자를 ‘에베소서의 바울’로 칭하겠습니다.

 

이 에베소서의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혹은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떤 가르침을 말하고 있나 오늘 본문을 눈으로 읽어나가다가 그 수가 좀 많은 거 같아 번호를 매겨봤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거짓을 버리라 /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라 /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마라 /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지 마라 / 악에게 틈을 주지 마라 / 도둑질하지 마라 /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라 /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 /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마라 / 덕을 세우는 말을 적절한 때에 하여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라 /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라 / 악독, 격정, 분노, 소란, 욕설을 내버리라 /
서로 친절히 대하라 / 불쌍히 여기라 / 서로 용서하라

 

어떠십니까? 여러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베소의 바울은 아주 자세하게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에 대해 설명하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솔직하게 드는 생각은 “이것들을 모두 지키며 살아가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내가 이것들을 빠짐없이 살면서 지킬 수 있을까?”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믿음이 깊어 바울이 열거한 것 중 많은 것들을 현재 살아내고 계시고 또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동일한 생각들은 드실 겁니다. ‘저것들을 모두 지키기란 정말 어렵겠구나,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왜 성서는 마치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가 성서가 요구하는 것들을 실수 없이 모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부정성을 피하고 피하며 내려 봐도 정직한 대답은 ‘아니!’였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또 성서는, 에베소서는 이것들을 요구하고 있을까요? 제가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자하기 때문입니다. 그 방향성은 좀 전에 바울의 가르침을 모두 포괄하는 한 단어인 ‘사랑’, 바로 ‘사랑을 향한 방향성’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이 성서를 통해 알려주신 삶의 양식들을 다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씀하시고 기록하신 이유는 우리의 실수와 부족함을 인정하시면서도 우리가 끝까지 그 방향성만큼은 잃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듯 모르는 듯 하나님의 뜻을 반(反)하는 삶을 살더라도 사랑을 향해 끊임없이 방향을 돌이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더라도 에베소의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삶의 가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자세히 살피기에는 아마 한 나절 이상이 걸릴 수도 있기에 그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간략히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거짓을 버리고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참된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거짓과 속임수가 없는 진실 된 말일 것입니다. 아마 말의 진실 됨의 유무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화를 내더라도 죄 짓는 데까지 이르지 말며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화를 품어봤던 사람들은 잘 아실 겁니다. 살면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화가 죄를 범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또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화를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화라는 것이 화가 나는 대상을 삼키기보다 자신을 삼키기 때문입니다.

 

또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악마는 우리가 참 사람됨을 잃게 만드는 것들을 말할 터인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늘의 빛을 받는 생명의 광합성을 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도둑질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여 그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궁핍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둑질은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방식이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갖게 되는 모든 물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도둑에 대한 정의가 상당히 넓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나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말을 하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때’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에,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했기에 스스로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악독과 걱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단어들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줄로 압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사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노여움을 품지 말라는 말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노여움을 품지 않는다는 말은 누군가를 용서했다는 말과도 같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오늘 여기서 용서에 관해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기에 이 정도까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용서의 문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꾸준한 기도 훈련과 제도적인 복합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향한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

 

지금 우리는 오늘 에베소서 본문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어떠십니까? 하나하나 들어보니 이 가르침대로 살아갈 자신감과 용기가 샘솟으십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렇게 항상 지켜나가기에는 우리 삶의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그 ‘사랑’을 향해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으며 좌절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그 약속들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해 인치심(30)을 받은 우리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길로 걸어가 보는 겁니다. 사랑이 있는 곳, 사랑이 가리키는 그곳을 향해서 말입니다.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감리교 절기상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분단 세월이 70년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어서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과 자리에 놓이더라도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사랑을 향한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면 사랑은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우리를 향한 시원한 하나님의 기대를 늘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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