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 Note] 선택의 기로 앞에 선 우리

2015. 8. 4. 02:23Note

201507802 쓰임교회 주일설교

선택의 기로 앞에선 우리

 

<요한복음 6장 24-35절>

24. 무리는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2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30.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1.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34.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Lumix gx9 / 14mm]

무더운 여름, 불안한 기후

오늘 쓰임교회 나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날이 정말 덥습니다. 여름이 마치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이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의 낮은 36도까지 올라가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밤은 열대야입니다. 여름이면 이렇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농도가 짙은 기후가 조금은 불안하기도 합니다. 무분별한 자연의 훼손과 안일한 태도의 환경파괴가 불안정한 기후를 만든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인 ‘기분 탓’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삶은 선택이다

여러분, 한 번쯤 들어본 문구겠지만, 철학자 샤르트르는 인생을 일러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인생은 B ‘Birth’와 D ‘Death’ 사이인 C ‘Choice’라는 말입니다. 이 사상가는 우리의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선택 앞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와 같이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까와 같이 조금은 신중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이 선택이라 해도 될 만큼 우리는 한쪽 편에 서게 됩니다. 이 선택은 믿음과 신앙의 영역까지 확장시켜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찾은 한 무리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요한복음 6장 24절 후반부의 말씀을 보면 오병이어 소문을 들었던 이들인지 아니면 어떤 이끌림 있었던 이들이었는지 확실히는 모르나 한 무리가 예수를 찾아 디베랴에서 가버나움(24)으로 옵니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25)”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동문서답을 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26).” 오병이어 잔치가 있었던 그곳에 이들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마치 그 현장에 있었다는 듯이 예수님은 이야기 하십니다. 이 대목을 읽다보면 예수를 찾아온 무리는 특별한 역할이 주어진 무리라기보다는 요한 공동체가 고백하는 예수를 접하게 될 청중이나 독자들을 향해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방편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와 이야기하는 대상이 누구이든지간에 예수는 오늘 본문을 통해 중요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양식은 하나님의 아들(인자)인 자신이 주겠다(27)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 무리가 예수께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28)”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29)하십니다. 무리가 되묻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30)” 이 대목을 보고 있노라면 무리가 예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이 갑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가르치는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시적인 배고픔의 해갈, 눈에 보이는 물질로 자신들을 채워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무리의 질문에 답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32-33).”

유대의 역사를 품고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분은 야훼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이루었던 광야의 ‘만나 기적’을 품고 살아가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낯설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고 그 빵을 주신 목적은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험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자 예수의 권위를 느낀 그 무리는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달라(34)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라고 말입니다.

믿음과 신앙이라는 선택의 기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곧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임을, 자신을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고 자신이 그의 아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사람,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매순간 삶이 선택이듯, 믿음과 신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의 기로가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가 걸어가신 길을 함께 걸어갈지 말지 그 선택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교단의 신앙관(예정론)을 이야기하며 하나님 앞에 예정된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릅니다만, 오늘 이 부분까지 논의를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이미 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요즘처럼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요즘만큼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힘든 시절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중심이 되어가는 사회, 생명과 보존보다는 계발과 훼손이 중심이 되는 사회, 끊임없는 경쟁으로 패자는 기억되지 않는 사회. 갈수록 생명과 평화에 반(反)하게 흘러가는 요즘 세상에서 참 하늘의 빛이 필요한 적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해야만 합니다. 뭔가 세상이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경험한 이들, 세상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불안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 중요한 가치들이 스러져가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 이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 가야할 길을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 밖의 이들에게는 ‘양심’이 되겠고, 교회 안에 머무는 이들에게는 믿음의 길, 예수의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배의 키를 어느 곳으로 향할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따를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 앞에

한 무리가 예수를 찾아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늘 자신들에게 주기를 요청했을 때, 예수는 자신이 곧 생명의 빵임을, 그리고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이 예수를 믿고 따를지를 말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된 가치를 따를지 아닐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말은 교회 안과 밖의 사람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고 응답하며 살지 말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 안의 용어를 사용하면) 예수를 믿을지 믿지 말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삶에서 돌아서거나 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선택하는 시기는 각자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아십니다.

주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선택하다

삶이 매순간 선택이듯 우리는 그리고 세상의 이웃들은 택해야 합니다. 예수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길을 함께 걸을지 말지를 말입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물론 그 선택이 꼭 기독교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늘의 빛에 잇대어진 이들과 함께 하면 됩니다. 그렇게,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예수를 찾아온 무리는 예수가 생명의 빵임을, 그가 사랑 없는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고 또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이임을 믿을지 말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미 잘 믿고 있다는 우리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 매 순간 주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해 그와 함께 걷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선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삶을 보고 믿지 않는 이들이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혼자서 그런 삶 보여주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는 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겠지요. 사랑이 가득한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때에 맞는 적절한 선택으로 이 무더운 여름 잘 넘어서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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