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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너울을 벗고, 자유를 향해

20160207 쓰임교회 주일설교

 

너울을 벗고, 자유를 향해

 

<고린도후서 3장 12-18절>

 

12. 우리는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대담하게 처신합니다.

13.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1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15.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주현절 마지막 주와 사순절, 그리고 변화주일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예수의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절기인 ‘주현절’의 마지막 주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절기가 시작되는데 그 절기가 바로 ‘사순절’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생의 여정을 떠나기 전에 복음서는 그의 모습이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 주이자 동시에 사순절을 앞둔 ‘변화주일’이기도 합니다. 교단마다 절기의 순서와 절기 명칭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앙생활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절기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절기에는 예수의 삶의 흔적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설 연휴, 행복하게 기억하기

 

오늘을 교회 달력으로 보면 방금 설명해 드린 것과 같은 의미가 있지만, 일상의 달력으로 보면 오늘은 또한 ‘설 연휴’ 하루 전날이기도 합니다. 내일이 설날인데, 다들 고향에 있거나 어디에 있든지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또한 공휴일임에도 일을 할 수 밖에 없거나 명절의 작은 행복조차 누릴 수 없는 이들 또한 잊지 않길 바랍니다. 

 

고린도 지명에 대한 소개와 고린도 전·후서 문제

 

이렇게 연휴를 앞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 지명에 대한 설명은 여러 번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항구 도시이자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해상 교통과 무역 중심지였기 때문에 경제와 문화가 발달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혼돈도 많았습니다.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각 나라와 민족의 우상들이 총집결한 그야말로 현란한 우상 도시이기도 했고 또한 거대한 야외극장도 있었으며 음행이 자행되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이러한 문화 속에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시의 상황 가운데, 고린도 전·후서의 수신자였던 고린도교회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는 바로 ‘바울에 대한 사도직’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교회 안의 신실한 성도들을 보호하고 더불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내용이 고린도 전·후서에 담겨 있습니다. 

 

너울과 자유

 

본문 3장은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된 것(3:6)으로 모세얼굴의 광채를 통해 주어졌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는 모세 스스로 얼굴을 가렸던 ‘너울’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또 하나의 ‘너울’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너울’은 구약의 성전휘장을 연상시킵니다. 성전의 휘장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갈라져 없어지게 되었고 이제 우리는 제사장이나 재물 없이 하나님께 곧장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옛 언약책을 읽을 때 ‘너울’이라는 것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그 ‘너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제거되었다고 말했습니다(14). 

 

이어서 바울은 주님께로 돌아서면 ‘너울’이 벗겨지는데, 주님은 또한 영이시기에 그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17). 그의 영이 있는 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믿음이 있는 곳, 주와 함께 거하는 모든 곳이 그의 영이 거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성전, 즉 교회 안에만 주의 영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마음과 접속된 사람들이 거하는 모든 곳에 하늘의 영이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의 영이 있는 그곳에 ‘자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유라는 것은 마음의 자유함, 정신의 자유함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너울’ 그리고 ‘자유함’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이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놓여있던 ‘너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너울’을 만들어 놓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울’이라는 것은 여성들이 쓰던 면사포를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만, 혹시 교회학교시절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강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라는 ‘너울’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놓여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합니다. 또는 부모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라는 ‘너울’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아니면 커다란 나의 자아라는 ‘너울’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너울’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하나님과 나 사이에 ‘너울’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여부는 나의 ‘자유함’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분과 맺은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의 마음과 생각이 자꾸 어둡고 무거워지거나 또 주위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이 어긋나는 것 같거나 내 마음과 정신이 거칠어지는 것 같다면 나를 둘러싼 ‘너울’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의 축적물인 나를 둘러싼 ‘너울’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그 ‘너울’을 발견했어도 그것을 벗어버리기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간은 하나님 앞에 고요히 머물러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찾는 이들을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설날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일 년에 명절이라는 것이 몇 번 없지만, 매일의 내일이 설날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운 이들을 기다리듯이, 우리의 매일의 일상이 하늘이 주신 설렘으로, 그리고 ‘너울’없는 자유함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너울’없이, 나와 너 사이에 ‘너울’없이 또 나와 나 사이에 ‘너울’없이 다가서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유함이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울 길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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