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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하나님의 의는 지지 않는다

20161131 쓰임교회 주일설교

 

하나님의 의는 지지 않는다

 

<이사야 65장 17-25절>

 

17.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19.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20.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21.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22.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23.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며, 그들의 자손도 그들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다.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주겠다.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Lumix gx9 / 14mm]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며칠 전, 미국 대선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민주당 대표인 힐러리가 떨어졌고 공화당 대표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 투표 결과를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신뢰가 가는 이야기 중 하나는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뭔가 특출 난 것이 있어서 이겼다기보다 힐러리가 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그 표가 자연스레 트럼프에게 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는 자국 시민들의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리고 있고 백인 남성의 우월주의가 더 견고해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특히 미국 내의 이민자나 유색인종들,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더 힘겨워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어제 있었던 광화문 집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와 미국 내부의 상황이 모두 혼돈 속에 빠진 듯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우리는 더욱 빛을 바라봐야 합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자기 삶의 몫을 충실히 살아내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의는 지지 않습니다. 

 

이사야서의 주제, 저자, 세계

 

오늘 설교 서두의 이야기는 조금 무거웠습니다만, 함께 살펴볼 이사야 본문의 말씀은 매우 희망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어둠 가운데 빛을 보여주시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는 세상, 우리와 함께 꿈꾸고 싶어 하는 세상을 이사야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함께 그려보는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있는 아주 긴 성경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는 그 길이와 담고 있는 내용이 많은 만큼 신약에서는 시편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됩니다. 이렇게 길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사야는 크게 두 개의 주제로 나뉘는데,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의(심판)’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후반부인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부분입니다. 

 

본 서신의 저자인 이사야는 남유다의 왕 웃시야(BC 791-739)야가 죽던 해에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를 대략 BC 739년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므낫세 왕(BC 697-642)의 통치기간 중에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대략 BC 680년). 이렇게 본다면 이사야서는 대략 6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저자에 관해서는 조금 논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많은 학자들은 심판이 중심 주제인 전반부(1-39장)는 이사야의 사역 초기에 기록되었고, 구원이 중심 주제인 후반부(40-66장)는 그의 사역 후기에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쓴 저자가 두 명 이상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전반부인 1-39장을 제1이사야, 후반부인 40-66장은 포로기 이후의 제2이사야로 보는 견해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신학적 관점이나 문체에 있어 이질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폭넓은 지성을 겸비한 작가 ‘카렌 암스트롱’은 <성서 이펙트>라는 책에서 이러한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제1이사야는 비폭력적인 신학을 펼쳤는데, 기원전 6세기 후반 바벨론에 등장한 제2이사야는 공격적인 신학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 제2이사야는 모세 오경과 거의 상관없는 신화적 전통에 기초한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전반부의 저자 이사야는 비폭력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후반부의 저자 이사야는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수가 몇 명이건 간에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는 세계는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공격적인 태도의 제2이사야가 기록을 했더라도 그가 그리는 세계는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어둠 중에 빛을 보게 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살펴보기 위해 본문을 세 개로 구분 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난 세월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 되지 않고 이방 나라들(13-23장)에게까지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곧 용서와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사야서 40장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선포는 이사야서 마지막장인 66장에 이르러 결말을 맺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인 65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소망을 알려주는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금의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7-19절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사랑고백을 하십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새롭게 창조하겠다하시며 지나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이전의 것들은 지나갔고 그것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시온의 상징인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창조하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의 백성들을 보시며 그들을 기뻐하고 그들이 자신의 즐거움이 될 거라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울음소리와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거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가 회복됨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너진 관계가 다시 설렘과 기대로 세워질 것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될 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20-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복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며, 그들의 자손도 그들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자기 삶의 몫을 받는 복입니다. 자신이 수고한 만큼 받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빌 때 일한 것 이상을 바라고 수고하지도 않은 양을 달라고 기도하곤 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먼저 자신의 수명을 온전히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정해진 수명을 살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다음 구절입니다. 집을 지은 사람은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은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라 했습니다. 또 무어라 했습니까.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이들을 일러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라 했습니다. 이게 진정한 축복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일한 만큼 삯을 받는 삶, 땀 흘린 만큼 자기 몫을 받는 인생. 자신이 지은 집,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 자신이 낳은 자식이 제 수명을 다 살아내는 인생 등을 주신다는 건 사람의 수고를 알아주신다는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필요 이상을 얻거나 편법과 꼼수로 이득을 취하는 건 복(福)이 아니라 오히려 화(禍)입니다. 

 

오늘 살펴볼 마지막 부분의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주겠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 정의로운 세상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의가 세워진 세상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풀을 먹는 세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다 했습니다. 이런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어린양과 소는 원래부터 먹던 자신의 먹 거리를 먹습니다. 그리고 이리와 사자가 약한 동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낮춥니다. 연약한 동물은 자신들의 식성을 바꿀 수 없습니다. 힘이 센 동물들이 자신의 자세를 낮추지 않는 이상 서로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위해 몸을 구부리는 세상, 이것이 하나님이 기대하고 꿈꾸는 세상입니다. 뱀이 흙을 먹이로 삼는 세상 또한 마찬가지이겠지요. 

 

하나님의 의는 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 세상은 많이 혼란스럽고 어두워만 보입니다. 우리는 권세 있는 자들, 기득권을 쥔 자들의 태도나 행태 때문에 샘솟는 화를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의 미래가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꿈을 꾸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그럼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상, 그 꿈은 어떤 꿈이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셨습니다. 이 대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더 친밀해지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복은 자신이 수고한 만큼 자신의 몫을 받는 복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얼마나 이 말씀이 속히 이루어져야 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수고한 자들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수고 없이 필요 이상의 몫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필요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보여 준 세상은 높고 낮음이 없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꿈을 함께 꾸는 자들은 이 말씀을 믿고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를 갖고 낼 수 있어야 하며 또 강자들은 자신의 몸을 낮추어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의는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꺾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함께 꿈을 꾸는 저희의 꿈도 꺼지지 않습니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그 꿈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당당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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