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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희망을 놓지 않는 삶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다녀와서)

20160807 쓰임교회 주일설교

 

희망을 놓지 않는 삶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다녀와서)

 

<고린도전서 9장10절>

 

10.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강정마을의 이야기 속으로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설교를 대신해, 지난 주중에 다녀온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의 행진 후기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하루에 많게는 22km, 적게는 11km씩 걸으며 느꼈던 마음을 나눠볼까 합니다. 

 

행사 소개부터 드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는 제 작년이죠, 2014년에 처음으로 이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함께 참석한 일행들과 같이 걷고 이야기 나누고 우리의 요구를 외치며 보낸 그 시간들이 참 의미 있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행사의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행사는 제주에 있는 강정마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도의 한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게 되면서 생긴 오랜 갈등이 지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이 오래되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길지만 김경훈 시인의 수필시 ‘3,333일’을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싸움이 시작된 후 9년하고도 한 달 18일째의 날이다. 언젠가 한때는 분노의 깃발이 울울창창 나부끼고 저항의 행렬이 거리를 가득 매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랜 투병에 효자 없듯이 오랜 투쟁에 사람들은 지쳐갔다. 

 

해군, 국방부, 경찰, 해경, 검찰, 법원, 언론, 국정원, 국회, 청와대, 재발자본, 미국, 제주도정, 도의회, 우익세력, 마을 내 찬성파들까지 사면에 사면을 곱한 전방위 십육면초가로 마을은 숨 막히고 짓눌린 채 결국 해군기지는 완공되었다. 강정천은 체념의 한숨으로 힘없이 흐르고 구럼비 바위는 무기력의 눈물로 고개를 파묻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여기 사람들이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투쟁일자를 하루하루 넘기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도둑질 강도짓 기지건설 10년의 마지막 작전으로 34억원 구상권 어뢰를 마을에 터뜨리고 행정대집행 함포를 중덕 삼거리 식당과 망루에 발사해도. 그러나 여기 여전히 사람들이 있다. 

 

강정대행진으로 제주섬 일주하며 평화의 창의를 알리고 그깟 벌금 구상권 몸으로 때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싸움이 시작된 후 9년하고도 한 달 18일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3,333일 한결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저 육중하게 들어선 기지보다도 더욱 큰 눈물과 한숨, 무기력과 체념의 안타까운 나날들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절제절명의 신념이 있기에 절망 속에서도 오직 사력을 다한 희망이 있기에 그 신념이 널리 감염되고 그 희망이 모두를 전염시켜 언젠가 다시 분노의 깃발은 울울창창 나부끼고 저항의 행렬은 거리를 가득 매울 것이다. 강정천은 희망의 완력으로 당차게 흐르고 구럼비 바위는 부활의 생명으로 당당하게 일어설 것이다.”   <제주투데이 기고글>

 

희망의 목소리를 내는 것

 

참 가슴 아프면서도 희망찬 메시지입니다. 강정은 여전히 아프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왜 이미 끝난 싸움을 아직까지 하고 있냐고’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한 마디 말은 ‘희망’입니다. 하늘의 뜻을 분별하고, 하늘이 베풀어준 있는 그대로의 창조섭리를 보존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희망’에 담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모든 싸움이 끝났을지라도 하늘에 잇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몫의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해야 될 일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완공된 강정의 해군기지는 여전히 작고 작은 우리들의 목소리 앞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하는 겁니다. 해야 합니다. 생명과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연대(solidarity)하는 것입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글 (<국민일보> 2013년 9월10일 투고 글 中) 중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꾀꼬리가 신에게 불퉁거렸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신을 찬미하고 싶지만 개구리 울음소리가 너무 커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구나.” 무슨 이야긴지 아시겠지요? 우리가 거대한 힘 또는 자본 앞에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 건 여전히 세상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꾀꼬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개구리 울음소리에 묻히더라도 울어야 합니다. 꾀꼬리가 자신의 목소리가 작다하여 울음을 멈추는 순간,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이전보다 더 크게 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한 구절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열매 맺을 곡식들을 기대하고 희망하며 밭을 일구고, 타작하는 사람 또한 타작을 통해 얻게 될 소득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둔 사람은 하나님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희망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꿈꾸며 한 걸음 내딛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연대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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