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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깨어있고 사랑하라

20180826 쓰임교회 설교

 

깨어있고 사랑하라

 

<에베소서 6장 10-20절>

 

10.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12.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차비를 하십시오.     

16.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18.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19.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20.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겨울을 나는 방법

 

주님의 평화가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길 빕니다. 

 

건강히 잘 지내셨습니까? 엇 그제는 ‘처서’였습니다.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있는 이 ‘처서’는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서가 지났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날씨가 후텁지근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름과 겨울 중에 어느 계절을 더 좋아하십니까? 저는 추위를 많이 타기에 겨울보단 여름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겨울을 더 좋아하시는 분들은 겨울은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는데, 여름은 더워도 옷을 더 벗을 수 없으니 겨울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죠. 겨울엔 이것저것으로 몸을 감싸면 어느 정도 추위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채움과 비움의 필요성

 

오늘 본문도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추위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위해서 옷을 잘 갖추어 입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악한 영과 싸우기 위해서는 옷을 잘 갖춰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편지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온 몸을 덮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신앙생활의 본질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갑옷’을 입으라는 이 말은 우리의 싸움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싸움과 전투가 없을 거라면 우리가 굳이 우리 몸을 ‘갑옷’ 따위로 감쌀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받은 단 한 번의 은혜, 주님으로부터 채워진 단 한 번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지속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물론 은총과 은혜로 충만해지는 경험은 매우 소중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좋았던 경험만을 붙잡고 살기에는 우리 앞에 펼쳐질 삶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인생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한 번의 시도로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르기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한 채, 지속적인 채움과 비움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싸움의 대상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더 큰 차원의 싸움이 있음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12절을 보면 그는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과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먼저 이 말은 싸움의 대상이 누구임을 알려주는 것입니까? 에베소서가 쓰여 질 당시는 거대한 ‘로마제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권력을 갖고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평범한 인간과 구분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이 말한 싸움의 대상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이자만 지금 말씀드린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악한 영’은 어떤 특별하고 유별난 영을 가리킨다기보다 우리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을 나타냅니다. 이 어둠은 곧 하나님의 거하시는 ‘나 자신’과 ‘내 이웃’을 잘 사랑하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결국 바울이 말한 싸움의 대상은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또 자신과 이웃을 잘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어두운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것들과 맞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이러한 힘을 상대할 수 있고 또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도 바로 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며 말입니다. 

 

정의의 가슴막이, 진리의 허리띠, 평화를 전하는 발

 

바울은 이 다음 구절부터 어떤 ‘갑옷’을 입고 어떤 ‘무기’를 착용해야 하는지 아주 상세히 알려줍니다. 그는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허리에 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 한 이 ‘갑옷’들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사람에게 있어 몸을 지탱할 때 허리가 가장 중요하듯, 이 ‘진리의 허리띠’를 허리에 동이라는 말은 진리 되신 예수의 삶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사신 삶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곧 ‘진리의 허리띠’를 동이라는 말의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의 가슴막이’로 가슴을 가리고 버티어 서라는 말은 가슴은 곧 인간미 즉, 인간의 따뜻함을 나타내기에 ‘정의로 가슴막이’를 하라는 말은 자신의 이익이나 속셈을 따르지 말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정의에는 반드시 인간의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의는 자신의 ‘의로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복음을 전할 ‘발‘을 갖추라는 말은 내가 가는 곳곳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전해질 수 있도록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곧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이 그곳에 함께 하심을 잊지 말라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바울은 이제 이러한 ‘갑옷’에서 더 나아가 어떤 ‘무기’를 지녀야 할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먼저 ‘믿음의 방패’를 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갑옷’에 이어 이 ‘무기’들 또한 이렇게 해석됩니다. ‘믿음’은 답 없는 불안한 인생에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힘’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이란 우리의 의심과 불안을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방패’는 곧 공격보단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다음은 ‘구원의 투구’입니다. 우리 몸에서 허리만큼 중요한 것이 머리입니다. 머리는 우리 몸의 가장 꼭대기에 있으며 우리의 행동을 주관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의 투구’를 받으라는 말은 내가 구원받은 자임을 잊지 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구원받은 자 곧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경험한 자로써 그분이 주신 자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사실 ‘믿음의 방패’가 방어용이라면 ‘성령의 검’은 공격용입니다. 물론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성령의 검’은 누군가에게 선제공격하라는 것이라기 보단 그에 앞서 우리 안에서 갈고 닦아야 할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검’은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막 들쑤시고 다니라는 말이 아니라 필요에 맞게 사용할 줄 알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두운 마음이 찾아올 때 혹은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적절히 꺼내 써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있고 사랑하라

 

물론 우리는 바울이 말한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삶이란 너무 다채롭고 치열하기에 모든 말씀을 모든 상황에 적절하게 적용시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바울이 ‘갑옷’과 ‘무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해 봤습니다. 바울은 결국 에베소 교인들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본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깨어있고 사랑하라”

 

바울은 에베소 교인과 지금 우리를 향해 “깨어있고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체의 모든 신앙생활을 습관적으로 하지 말고 늘 깨어 있되, 예수께서 주신 두 가지의 지상 명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잘 실천(마22:37-40)하라고 바울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옷’과 ‘무기’의 종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민감하게 깨어서 살되, 사랑하기를 잊지 않는 것 말입니다. 

 

함께 살아갈 사람이 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 말미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19-20). 그도 고독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도움을 청할 사람과 우리를 이해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험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함을 인정하되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늘 깨어 살아가되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겹의 옷을 입듯이, 우리 서로서로가 버팀목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그 여정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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