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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

20180819 쓰임교회 주일설교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

 

<열왕기상 3장 3-14절>

 

3.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였으며, 자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랐으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4. 기브온에 제일 유명한 산당이 있었으므로, 왕은 늘 그 곳에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이 그 때까지 그 제단에 바친 번제물은, 천 마리가 넘을 것이다. 한 번은, 왕이 그리로 제사를 드리러 갔는데, 

5. 그 날 밤에 기브온에서,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하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요 나의 아버지인 다윗이, 진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 큰 은혜로 그를 지켜 주셔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그 보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7.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나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8.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9.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10. 주님께서는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마음에 드셨다.     

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스스로를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12.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13. 나는 또한, 네가 달라고 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너에게 주겠다. 네 일생 동안, 왕 가운데서 너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14. 그리고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네가 나의 길을 걸으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오래 살도록 해주겠다."

 

주님과 솔로몬의 대화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본문의 저자는 솔로몬을 일러 주님을 사랑하며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르는 자로 표현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욥과 같이 하나님을 흡족하게 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여러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중에 특히 ‘기브온’의 제일 유명한 산당에서 자주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은 다신의 세계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드러냈던 그의 마음의 표현이라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 ‘산당’이란 대체로 높은 장소에 세워놓았던 이스라엘 또는 가나안의 야외 제단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솔로몬이 대화를 나눈 바로 이곳, 기브온 산당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날 밤, 솔로몬의 꿈속에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바로 이 질문 뒤에 우리가 ‘솔로몬’하면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기억하고 있는 ‘지혜‘를 구하는 답변이 등장합니다. 그는 주님께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자 같지 않은, 어떤 성숙한 요구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답하죠.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이요 나의 아버지인 다윗이, 

진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그 큰 은혜로 그를 지켜 주셔서, 

오늘과 같이 이렇게 그 보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나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곧 그 수를 셀 수도 없고 계산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큰 백성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를 구한 솔로몬

 

그는 그의 아버지 다윗을 보며 그가 어떻게 그의 나라와 백성을 다스렸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행함대로 그도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보고 자라느냐에 큰 영향을 받나 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고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써 아버지의 삶을 본받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솔로몬은 주님의 질문 앞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아버지 다윗이 받은 복을 이어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 그리곤 그 지혜를 갖고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길 원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았던 것마저 더해주시기로 하십니다. 그가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자기만족의 요구를 하지 않았기에 주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것도 더해주시기로 한 것입니다. 주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스스로를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 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듣고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네가 달라고 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너에게 주겠다. 

 

네 일생 동안, 

왕 가운데서 너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네가 나의 길을 걸으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오래 살도록 해주겠다."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자신의 소원을 말함에 있어, 스스로의 한계와 자신이 주님의 백성 가운데 그저 한 명에 불과함을 인정했습니다. 왕 된 자가 자신을 이렇게 여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왕위에 앉은 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하나님께 요구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솔로몬은 ‘아는 자‘입니다. ‘안다는 것’은 사람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안다는 것,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 때라야 사람은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님 앞에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주님의 백성을 지혜롭게 재판하고 선과 악을 잘 분별하길 원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한 마디 말에 사람의 생명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왕에게 있어 두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우리 삶과도 아주 밀접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최근 이와 관련된 일을 겪었기에 솔로몬이 구한 이 지혜의 필요성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잘 판단하고 또 선과 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옳음만 강조하는 사람은 진보나 보수를 떠나 똑같이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로몬이 주님 앞에 구한 그 지혜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고 왜 그 지혜가 중요할까요? 

 

이해관계의 영향

 

저는 두 개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지혜롭게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저는 이것을 법률 혹은 법의 개념 속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사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를 유지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때론 법으로 인해 더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법률이나 법은 때론 유명무실(有名無實)할 때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법’은 ‘이해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이해관계라 함은 서로의 ‘이익’, ‘이득’을 위한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해관계’에 있어 끼어 들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솔직함’, ‘정직함’입니다.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오히려 ‘거짓말’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해관계’로만 얽힌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분쟁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툼이나 분쟁이 없는 관계가 사실 비인간적인 관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부모는 자녀와 생각이 다르고 또 같은 자녀라 해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또 연애나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각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에 관한 이해입니다.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어느 정도의 다툼, 분쟁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직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법, 법률은 이해관계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진짜 자신을 숨기게 됩니다. 거짓말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되면 뭔가 안 좋을까요? 사실 이런 이해관계가 불편함이 없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짓말이 늘수록, 진실 되지 못할수록 외롭고 고립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럼 사람은 자연히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자유가 주는 다양한 감정인 즐거움, 슬픔 등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은 재판

 

솔로몬이 백성들을 지혜롭게 판단하고 싶다는 말은 분쟁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권위로 자유를 박탈하지 않고 싶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재판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이득을 취하지 않고 당사자 간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싶은 그의 바람이 드러난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책 <이방인>에 관해 ‘로제 키요’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해당 글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는 재판이라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사건의 외관만을 보고 판단하게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짓되고 억지이며 왜곡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 세계에서는

 정의(재판)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그 정의는 

필연적으로 그러한 외관들만을 보고서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의는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거짓되고 억지이며 왜곡된 것입니다. 

 

뫼르소라고 하는 

‘우리들에게 어울리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는 바로 복음서가 말하는 

‘남을 재판하자 말라’인 것입니다. 

 

이 ‘남을 재판하지 말라’는 

곧 ‘남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으로 보충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형 폐지를 위한 

카뮈의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민음사, p.161

 

‘로제 키요’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늘 법정에 선 것처럼 살아갑니다. 삶 전체가 법정에 선 것 같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삶은 어떤 기나긴 재판입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구한 ‘지혜롭게 재판을 하고 싶다‘는 소원은 그 어떤 소원보다 우위에 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나 특정한 상황을 외관들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길 원했습니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왕과 같은 자리에 있는 자의 판단은 더욱 신중하고 엄중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힘이 있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도 법정에 선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늘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재판, 심판, 정의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솔로몬이 원했던 지혜로운 재판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짜 선, 악을 알기 위한 시도

 

솔로몬은 지혜롭게 재판하기를 원함과 동시에 선과 악 또한 지혜롭게 분별하길 원했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것, 이것은 여러분께 쉬운 일입니까? 저는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선과 악이라는 것도 재판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너무 뚜렷해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함에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것들일까요? 

 

저는 선과 악에 개념에 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선과 악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은 왜 중요할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구분하며 두 세계는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말 밝고 어두운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계가 맞는지를 재구성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83).” 

 

“<허용되었다>, <금지되었다>라는 것이 

사실 무엇인지 통찰할 수 있는 곳에 

넌 아직 가보지 못했어. 

비로소 하나의 진실을 느낀 것뿐이야. 

다른 것이 또 올 거야. 

그것에 자신을 믿고 내맡겨봐!(85).”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p.83, p.85

 

우리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두운 세계, 나쁘다고 여기는 것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말입니다. <데미안>에 나온 표현대로 우리는 왜 나머지 절반의 세계 즉, ‘어둠’을 경험해 봐야 할까요? 그건 스스로 깨닫기 위함입니다. 누군가 이것은 나쁘고 저것은 좋은 거야, 이건 잘 못된 거고 저건 바른 거야, 라는 것 너머 진짜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선과 악의 개념을 갖기 위함입니다. 

 

흔히 ‘어둠, 악’이라고 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것이 진짜 ‘악’이 아니었음을 그것이 또 하나의 ‘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선’이라고 했던 것들이 진짜 ‘선’이 아니었음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나만의 ‘선’, ‘악’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솔로몬은 진짜 선, 진짜 악을 구분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진짜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르는 길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왕 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당에서 주님의 음성과 마주했고 주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했을 때에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소원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원했습니다. 하나는 지혜롭게 사람들을 재판하길 원했고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을 지혜롭게 분별하기를 원했습니다. 지혜롭게 사람들을 재판한다는 건 사람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 대한 현명함을 잃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선과 악을 분별하고 싶다는 건 그 시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부호를 붙임으로 참 하나님의 뜻에 제대로 접속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꾸만 멈춰 서서 하나님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래서 바쁜 일상 중에도 고요히 머물러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불어 말씀 묵상과 폭 넓은 독서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허물없이 대화하고 그들을 통해 주어지는 주님의 음성 또한 새겨들어야 합니다. 다양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는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러한 시간들을 쌓아가며 참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평생의 작업입니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때론 미풍으로, 때론 강풍으로 다가오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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