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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심판을 통해 은총의 시간으로

20171203 쓰임교회 주일설교

 

심판을 통해 은총의 시간으로

 

<이사야 64장 1-9절>

 

1.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시면,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 것입니다. 

2.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적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님 앞에서 떨게 하여 주십시오. 

3. 주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우리들이 예측하지도 못한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에,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4. 이런 일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 말고 어느 신이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5. 주님께서는,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구원을 받겠습니까?     

6. 우리는 모두 부정한 자와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었으니, 우리의 죄악이 바람처럼 우리를 휘몰아 갑니다. 

7. 아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굳게 의지하려고 분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셨으며, 우리의 죄악 탓으로 우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8.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9.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Lumix gx9 / 20mm]

강림절과 대림절의 의미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모든 교회는 길었던 ‘성령강림절’을 마치고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에 들어섰습니다. 매년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대림절은 각 교단이나 교회마다 부르는 명칭이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많은 교회가 부르는 명칭은 ‘강림절’입니다. ‘강림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권의 형태로 임한다는 뜻입니다. ‘강권’이란 말은 말 그대로 강한 힘을 가진 권력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강력한 힘으로 상징되어 이 땅에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의지보다는 주님의 임재가 더 앞세워집니다. 

 

하지만 저희 쓰임교회를 포함한 또 다른 교회들은 성도들의 능동적인 면을 강조하는 대림절을 사용합니다. 주님 오심을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의미의 강림절보다는 이전에도 오셨고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의 준비성을 앞세우는 기다림의 절기로 대림절을 사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강림절, 대림절을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그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침묵의 시간 ‘대림절’

 

미국의 가톨릭 평화주의자이자 작가였던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는 대림절기에 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림절기는 기다림의 시간이며, 대망과 침묵의 시간이다.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시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아기를 밴 여인들은 너무나 행복하며 만족한다. 그처럼 기쁜 침묵의 옷을 입고, 자신 속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 한 마리가 손바닥 위에서 푸르륵 날아오르는 소리처럼 느낀다. 그러나 마음을 집중해서 그런 약동을 기다리는 것은 깊은 침묵의 담요 속에 있는 것과 같다.” (토마스 머튼, <토마스 머튼과 함께 하는 대림절기와 성탄절기>, 한국기독교연구소, p.5) 

 

도로시 데이는 대림절에 담긴 기다림의 의미를 침묵과 연관시켜 설명했습니다. 주님 오심은 이를 기다린 사람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 또한 침묵의 옷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오심은 또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 오심은 새로운 생명으로 인한 여인들의 기쁨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생명의 기다림 또한 깊은 침묵의 담요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겁니까? 몸과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곧 오실 주님을 잘 알아차리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들뜸의 환호 속에서는 제대로 분간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사람이든 어떤 날이든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다보면 자연스레 차분해지고 말 수가 줄어드는 걸 경험하지 않습니까?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 마음을 닮아야겠습니다. 

 

죄를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주님

 

대림절 첫 주,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이사야 64장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64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소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이들의 표현방식은 다양한데, 이사야서에 드러난 주님오심은 죄를 심판하는 이의 모습이기에 어둡고 무겁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사야의 말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모든 산이 주님 앞에 떨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불이 섶을 사르듯, 불이 물을 끓이듯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신 이유는 백성들이 오랫동안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님 오심은 곧 심판 즉, 죽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의 주님 오심은 두려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이러한 심판에서 열외 되는 이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들은 누구입니까?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 심판에서 열외 됩니다. 이들을 제외하곤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심판은 곧 회복이자 다시 시작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진짜 중요한 부분은 8절부터 등장합니다. 이사야는 이전의 고백에 이어 이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주님,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 보십시오.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8-9).”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해 주님께서 마음을 돌이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는 주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주님께서 빚으신 작품임을 상기시키며 죄를 지은 이들도 당신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더불어 죄악은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당시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둡고 무겁습니다. 주님 오심은 열외 된 소수의 백성들 말고는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 전체의 흐름을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이사야가 살던 당시 주님이 오신다면 죄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심판을 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사야는 주님을 향해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진노를 거두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님 오심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사야의 고백으로 인해 심판은 곧 회복이자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주님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고 다시 의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비워내고 채우는 대림절기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대림의 절기는 기다림의 절기이자 고요함이 요청되는 절기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가 다시 돌아보아야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이를 위해 비워내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는 한 달 되기 바랍니다. 

 

그럼 비워내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최근 제 관심사와 연관지어 몇 가지를 나열해보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망각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일,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망각함으로 타자와 함께 하는 주님 또한 망각하게 되는 일, 고요함 속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분주함과 불안함 때문에 듣지 않고 허둥대는 일 등은 비워내야 할 것들이라 여겨집니다. 

 

그럼 채워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도로시 데이가 이야기 한 것들입니다. 고요함, 침묵, 느긋함 등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고독’은 참 좋은 시간이 될 겁니다. 

 

12월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자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달입니다. 이사야는 주님 오심을 두려움으로 기다렸지만 이는 곧 자기 자신과 백성들을 돌아보는 회복의 시간이자 새로운 출발의 시간이었습니다. 비울 것은 비워내고 채울 것은 가득 채우는 대림절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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