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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티와 흠이 없으라는 하늘의 요청

20171210 쓰임교회 주일설교

 

티와 흠이 없으라는 하늘의 요청

 

<베드로후서 3장 8-15a>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12.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Lumix gx9 / 20mm]

베드로후서를 살피며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입니다. 재단에 있는 촛대에 두 번째 초가 켜졌습니다. 초의 개수가 늘어남은 곧 성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여러분께서는 그날의 의미 속에서 살아가고 계신지요? 성탄의 의미가 현재 여러분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면 금세 지나가버리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베드로후서입니다. 베드로후서는 정말 베드로가 기록한 서신인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 성경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해당 서신의 저자를 평범히 ‘저자 베드로’라고 칭하겠습니다. '저자'라고 하는 것은 해당 내용이나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정신만으로도 그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내용면에서 좀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염두 해 위로와 권면으로 채워져 있다면 베드로후서는 예수의 재림 지연으로 인해 교회 내부에 소란을 일으키는 거짓 교사와 거짓 교훈에 관해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지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저자의 재림지연에 관한 이해와 그 대처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주의 재림 지연에 관한 의미

 

8절을 보면, 저자 베드로는 자신의 재림에 관한 이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주께서 재림을 늦추는 이유는 그의 오래 참음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를 향해 주님에 관한 인식의 틀을 확장시켜줍니다. 주께 있어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며 주님의 이해는 우리의 이해방식이나 그 규모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분의 오래 참음은 다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아무도 멸망하지 말고, 회개를 통해 모두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 베드로는 방금과 같은 말을 하면서도 성도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합니다.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이고,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며, 땅과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다 드러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곧 땅위 모든 것의 소멸을 상징합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까요? 모든 이들의 회개를 위해 주님의 재림은 지연됐지만, 그럼에도 재림은 언제든 시행될 수 있고, 주님의 재림은 곧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변화를 시도하라

 

하지만 이런 글의 분위기는 11절 이후 조금 바뀌게 됩니다. 저자 베드로는 주께서 오시면 모든 것이 녹아 없어질 텐데, 그날과 그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몫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우리의 변화를 유도하며 그로써 주님의 날을 앞당겨야하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물음의 형태지만 이미 그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당장의 삶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태도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죠. 저자의 현명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장의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저자의 이 말은, 정말 주님의 도래를 앞당겨 이 땅의 모든 것을 파괴적으로 바꾸고 싶어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구절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자들이 바라는 것은 주님의 심판이 아니라 정의가 깃들여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다리고 고대하는 것이 이것이라면, 이러한 세상이 오도록 우리가 당장에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시 말해 티도 흠도 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다시 하죠.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은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티와 흠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잠잠히 머물라

 

우리가 모든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보듯이, 대림주간을 주의 재림과 연관 짓고는 합니다. 오늘 재림에 관한 본문을 다룬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 절기에, 우리는 베드로후서가 쓰일 당시의 성도들과 함께 티도 흠도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요청받았습니다. 더불어 주님의 진심은 이 땅 백성들을 향한 심판이 아니라 정의가 바로 서는 세상을 위해 당장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하신다는 것 또한 알게 됐습니다.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말이 가진 무게감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 얼마나 대단하여 자신의 흠과 티를 스스로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처음 한 가지는 거룩한 존재 앞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일과 다음 한 가지는 그분의 도움을 믿고 그런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티와 흠을 볼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아는 것이,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자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 우리는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의 초를 밝혔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주께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오래 참고 계신데, 그 이유는 우리가 티와 흠이 없는 존재가 되어 이 땅에 정의가 깃들 게 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주님의 재림은 현재 진형 중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정의의 도래를 가져올 수 있기에 우리 삶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주님의 재림 또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마저 재림의 시간이 관통하고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최근 읽은 책의 소제목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며 마칠까 합니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이 거대한 화물선을 나른다'라는 말이 그 말인데요. 소제목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글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급하게 서두르면서 무슨 일을 하면 결국에는 맑은 시각을 잃고 스스로 장애물이 되고 맙니다. 고요히 대지를 흐르는 강물을 보세요. 저런 강물이 크고 무거운 화물선을 나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휘몰아치는 급류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논밭과 초원을 황폐화시키지요.”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을 일을 하라>, 문학의 숲, p.76)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이 대림의 절기,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주님 앞에 잠잠히 머물며 그분의 요구와 그분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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