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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재림에서 대림으로

20171217 쓰임교회 주일설교

 

재림에서 대림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20 ; 23-24절>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사는 모습이 관계를 드러낸다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추위가 이번 주 초에 기승을 부르더니 잠시 주춤하다가 주말이 되자 다시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바쁠수록 더 잘 쉬시고 잘 드시며 몸과 마음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강대상에 있는 다섯 개의 초 가운데 세 번째 초까지 불이 켜졌습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즘 여러분께서는 삶의 속도를 잘 늦추며 지내고 계신지요? 속도에 관해 자주 말씀드리는 이유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는 고요함이 깃들기 어렵고, 고요함이 없으면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가 우리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사느냐에 따라 평소 우리가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평소 내가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내가 주님과 맺고 있는 관계도 어느 정도 보인다는 말입니다. 확실하다 말한 순 없어도 거의 그렇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연결 지어 설명하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말씀인데, 해당 본문에서 이를 조금 풀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림의 의미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서신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의 재림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본 서신이 쓰일 당시가 예수 부활 사건 이후, 약 3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예수께서 당장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던 상황에서 성도들이 자꾸 죽어가자 재림의 때와 또 재림이 있다면 어떻게 이루어질지 의혹들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곤경에 처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재림에 관한 이해와 교훈을 전하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하고 또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5장 16절부터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관해 알려줍니다. 

 

여러분, 재림을 준비하라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당시 재림의 의미는 이 땅에 주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뒤집고 악(惡)은 물리치고 의(義)는 바로 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일 당시도 그러했고 지금도 예수의 재림은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재림에 관해 씨름을 해봐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지금 나에게 재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림이라는 게 주님이 이 땅에 강력한 힘으로 오셔서 강제적으로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재림을 믿는다면 이를 믿는 자들이 ‘지금’ ‘바로’ ‘여기서’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재림은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두신 변화에 대한 요구, 요청이라고 여겨집니다. 과정인 거죠. 우리가 하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당부가 재림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그 요청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구절씩 살펴보며 더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작은 것들을 통해 큰 성취를 이루라

 

먼저 16절에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주 듣고 또 자주 나누는 성경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간명한 구절이 더 어려운 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해 봐야죠.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기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수도원 정신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포함해 다양한 수도원을 다니며 그 전통과 정신을 전하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을 자주 인용하려 합니다. 

 

그럼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기쁨을 잘 유지하려면 일상의 작은 일들 속에서 의미를 잘 발견해야 한다고 했는데, 방금 소개한 책의 작가 페터 제발트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많은 것보다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는 작은 것들을 통해서 더 큰 성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케케묵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런 생각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새로운 철학이다. 아낌의 정신이 배어 있는 철학, 그 정신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대하고, 그로써 한층 넉넉한 세상을 만드는 삶의 철학이다.” (페터 제발트,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문학의숲, p.141) 

 

그렇죠. 작은 것들을 통해 큰 성취를 맛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큰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외심을 갖고 일상을 낯설게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시선을 획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접속을 이뤄 일상을 낯설게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낯선 시선으로 작은 일들 속에서 의미와 보람, 성취를 맛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라

 

17절에서 바울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신앙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기도를 지속하는 것일까요? 자신에게 집중하는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자신의 내면을 경유해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기도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페터 제발트는 수도사 베르나르도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프랑스 다종 지방 백작의 궁정에서 태어남. 베네딕토의 계율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시토 수도회 창립)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잘 지내겠는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온전한 인간일 수 있는가?"” ​(위의 책, p.42-43) 

 

여러분,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끊임없이 화해를 이루는 것입니다. 풀어 이야기하면,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그리고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 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작음과 그분의 크심을 알라

 

다음 1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방법은 넓은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주의 법칙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작음과 하나님의 크심을 통해 세상 모든 생명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페터 제발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잠을 많이 자느냐 적게 자느냐, 살을 빼느냐 마느냐,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하느냐가 아닙니다. 그 모든 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 나의 생명이 온 우주의 법칙에 고이 감싸여 있음을 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이지요. 즉 몸과 정신과 영혼이 모든 존재의 근원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때 이루어지는 대화합의 삶입니다.” (위의 책, p.47) 

 

사실 늘 감사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 감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 위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어울려 있음을 알아채야 합니다. 감사는 나의 작음과 그분의 크심을 알수록 더 크고 깊어지는 법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바울은 19절에서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역할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실 거라 하시며 성령의 역할을 일러 다음과 같이 표현했죠.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14:26).” 

 

성령은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가르친 모든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해 무슨 말입니까? 예수와 제자들을 다시 묶어 준다는 말이죠. 쉽게 말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바울의 이 말은 예수와 자신과의 관계를 잊지 말라는 말의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문제와 갈등 앞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계속해서 묻는 것입니다. 그것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함께 살펴볼 마지막 말씀은 20절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입니다. 여러분, 예언이라 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예언자’를 일러 외로이 사람들 앞에 서서 외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죠. 그럼 이 예언자는 무엇을 외치는 자입니까? 보고 듣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니 어서 악의 길에서 떠나라고, 그 임박한 소식을 전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알아차리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음 또한 알아차리라는 말일 것입니다. 

 

재림의 메시지에서 대림의 메시지로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림절 세 번째 주를 맞아 데살로니가전서의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예수의 재림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메시지가 지금 우리 또한 말씀 앞에 서게 했습니다. ‘재림의 메시지’가 ‘대림의 메시지’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몇 가지의 메시지를 나누다 보니 마치 어떤 ‘신앙의 원칙’을 알아보는 시간 같기도 했는데요. 가장 심플한 말씀이 어쩌면 가장 어렵고 난해한 말씀일 수 있기에 각 구절을 풀어본 것입니다. 

 

다섯 가지의 말씀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그 의미만 짚어보고 마치도록 하죠. 

 

①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일상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으로 작은 일들 속에서 보람과 의미, 성취를 맛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의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②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은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 곧 하나님과 잘 지내는 것임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잘 아는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잘 아는 것이기 하기 때문입니다. ③ 다음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넓은 시각을 갖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연스레 흘러나올 것입니다. ④ 다음으로는 ‘성령을 소멸하지 마라’입니다. 이는 예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잊지 말고 그분의 가르침과 뜻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원하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늘 알려주실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⑤ 마지막으로 ‘예언을 멸시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이 우리에게 다가옴을 잊지 말라는 말인 것입니다. 

 

기다림의 절기인 이 대림절에 우리는 더욱 주님과 긴밀히 지내야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과 그분의 사랑을 더욱 잘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인사는 바울의 메시지로 마치려 합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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