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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주님 오심의 깊은 의미

20171224 쓰임교회 주일설교  

 

주님 오심의 깊은 의미  

 

<누가복음 1장 47-55절>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슬픔을 나누는 대림절 마지막 주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대림절 마지막 주이자 성탄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평화의 왕이 오신다는 건 매우 기쁜 일입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왕께서 이 땅의 어둠을 밝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기뻐해야함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마지막 대림절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습니다. 가슴 아픈 소식이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 충북 제천 피트니스센터 화재로 2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 필리핀의 한 해상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탑승객 258명 가운데 최소 4명이 숨지고 90명 가까이 실종됐습니다. 이번 한 주간 소중한 생명들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성탄은 기쁨보다는 애도에 더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만 슬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는 슬픔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들뜬 마음은 조금 가라앉히시고 고요함 가운데 삶을 나누는 연말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평화가 회복되는 날  

 

성탄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누가복음 1장입니다. 누가복음의 신학은 한 마디로 ‘기독론’입니다. ‘기독론’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예수의 탄생은 곧 하나님 약속의 도래기도 합니다. 평화의 왕의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중에 예수를 품은 마리아는 찬송을 부릅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마리아의 찬송을 잘 보기만 해도 우리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시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녀의 노래 가운데 핵심 구절 몇 개를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예수의 오심은 곧 이 땅의 평화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탄생은 비천한 자와 주린 사람들을 회복시키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을 흩으셔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은 힘과 권력이 무너진다는 예고된 전복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리는 성탄절은 선물을 주고받고 그저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만은 아닙니다. 물론 한 해를 마무리하며 고됐던 지난 시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축하하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우리는 예수 탄생의 의미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꿈을 함께 꾸는 사람들  

 

저는 그래서 평화의 왕을 마음에 모신 사람이 나아가야 할 방향, 추구해야 할 것에 관해 생각해 봤습니다. 평화의 왕이 이 땅에 오심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며 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어떤 변화를 겪는지 궁금했습니다. 주님의 은총은 무조건적이지만 그 은총을 삶으로 번역해 내는 데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노력과 훈련, 생각이 바라보아 할 푯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 힌트를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책 <누가 사람이냐>에서 얻었습니다. 해당 글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궁극적인 의미 속에서 닻을 추구하고 있는 인간은, 깊은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조는 동안 왕궁을 꿈꾸는 파선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자기 배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으면서 목적지를 기억하지 못하여 방향을 상실한 사람이다. 인간은 불안한 가운데, 메시지를 잊어버린 전달자이다.   

 

성서가 세계에다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공한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런데 성서가 세계에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공한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성서는 하느님에 관한 책이 아니다. 성서는 인간에 관한 책이다.   

 

성서의 관점에서 보면 -   

 

누가 사람이냐? 하느님의 꿈과 계획을 함께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존재, 세계를 구원하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키는 하느님의 꿈, 그분의 참된 형상이며 그분의 지혜, 정의 그리고 사랑을 반영하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다. 하느님의 꿈은 그분만의 꿈일 수 없다. 그 꿈은 계속되는 창조의 드라마에서 한 배역을 담당한 인간과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로, 구원의 드라마를 전개시켜 나가든지 아니면 가로막든지 한다. 악의 힘을 약화시키든지 아니면 강화시키든지 한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누가 사람이냐>, 한국기독교연구소, p.151)  

 

말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글의 중간 중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만 새겨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세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역시 성경은 세계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 사람이외의 모든 것이 하등하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심이라는 말은 사람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헤셸은 그 사람의 역할을 ‘꿈’과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꿈은 이것이었죠. ‘하느님의 꿈과 계획을 함께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존재’, ‘세계를 구원하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키는 하느님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 ‘그분의 참된 형상이며 그분의 지혜, 정의 그리고 사랑을 반영하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   

 

이 말도 좀 어렵지만 쉽게 말해 이런 말이겠죠. 하나님이 꾸신 꿈을 함께 꾸고 하나님과 함께 아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을 이 땅 가운데 펼쳐야 하는데, 그 ‘꿈’은 정의와 공의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헤셸은 참 사람이란 바로 이런 존재라고 이해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 새길 것이 가득합니다.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서는 꿈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오늘 우리는 대림절 마지막 주를 맞아 누가복음의 말씀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누가복음 가운데 태중에 예수를 품은 마리아의 찬송, 고백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평화의 왕을 품어 매우 기뻤습니다. 지금 그 기쁨이 2천년이 지난 우리에게 다시 전해졌습니다. 그 기쁨은 시대를 뒤흔드는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은 비천한 자와 주린 사람들을 회복시키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을 흩으셔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실 분이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마리아의 찬송은 헤셸의 이야기로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헤셸은 사람이 가진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삶의 길잡이로 삼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이 가신 길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혜셸은 그분의 길을 풀어 설명해 준 것이죠. 그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그분의 아픔이 있는 곳에 정의와 공의가 바로 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 대림의 절기, 우리에게 가슴 뛰는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여러분, 다가올 모든 시간에 주님 오심을 삶으로 증거하고 또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쁨 되길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진 주님 오심의 깊고 고요한 의미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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