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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걷는 길을 돌아봐야 할 때

20190113 쓰임교회 주일설교

 

걷는 길을 돌아봐야 할 때

 

<사도행전 8장 14-17절>

 

14.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로 보냈다. 

15.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16.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던 것이었다. 

17.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주현절: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의 알림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길 빕니다. 

 

오늘은 주현절이 지나고 맞이하는 그 첫 번째 주입니다. ‘주현절’은 예수께서 공적인 삶을 시작한 때인 ‘공생애’를 기억하고 또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주현절은 나라 혹은 종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는데요. ‘위키백과’에 설명이 잘 되어 있기에 여러분과 함께 나눠볼까 합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 공현절(公現節 "공식적으로 나타난 날") 또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의 출현을 축하하는 기독교의 교회력 절기이다. 날짜는 전통적으로는 1월 6일이나, 나라에 따라서는 1월 2일부터 8일 사이의 주일(일요일)로 하기도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 개신교에서는 주현절(성공회는 공현절)이라고 부르며, 동방 정교회에서는 신현 대축일, 주님 세례 대축일 또는 성삼위일체대축일이라고 부른다. 

 

'주현' 또는 '공현', '신현'이라는 말은 예수의 신성(神性)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을 뜻한다. 이를 서방 기독교에서는 동방 박사가 예수를 찾은 때로 보고, 동방 기독교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때로 본다. 한편, 마니교를 비롯한 고대의 몇몇 나스티시즘(영지주의) 분파들도 예수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때를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진정으로 나타난 때로 보았다. 

 

주현절의 절기색은 ‘흰색’이다. 흰색은 흠 없는 순결, 거룩함, 완전, 위엄, 영광, 즐거움을 상징하는 신성의 색으로, 주님 성탄 대축일이나 주님 부활 대축일과 같은 기쁜 축제와 그리스도의 생애 중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사용하는 전례 색상이다.”

 

물론 들으신 바와 같이 종파나 나라에 따라 예수의 신성에 의미부여 하는 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주현절’의 의미는 예수께서 공적인 하나님 나라 사역의 시작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세례를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 8장의 본문은 사도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도착해 거짓 마법사 시몬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전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의 길에 들어섭니다(12). 거짓 마법사 시몬마저 빌립을 통해 세례를 받게 되죠.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전해졌고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두 사람이 사마리아 성에 온 이유가 이곳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보다가 특이한 점 발견 못하셨습니까? 

 

세례와 성령 사이에 놓인 과정

 

하나님의 일(역사)은 두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도 빌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온 이유가 뭔지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6절에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냐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을 뿐이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던 것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례’를 받음과 ‘성령’을 받음 사이에 어떤 과정이 필요함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성령도 받긴 했습니다만, 예수께서는 한 존재 안에 신성과 인성이 통합된 분으로 묘사되기에 그 일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분위기에 이끌려 받은 세례

 

그런데 우리는 충분히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과정 중에 자연스레 동네를 감싼 어떤 ‘분위기’가 형성됐을 테고, 그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특별한 의심 없이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세례를 받았다기보다는 옆의 사람이 받기에 자신도 덩달아 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왕왕 이런 일을 경험하거나 목격하지 않습니까?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혹은 저 사람이 가진 것이 좋아 보여 나 또한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정신분석의 대가인 자크 라캉은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란 말도 하긴 했습니다만, 우리는 자주 남이 가진 것을 더 좋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세례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두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손을 얹고서 성령을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결단과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을 테고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참 세례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멈춰 서서 생각할 때

 

쓰임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도 모른 채 무언가에 이끌리거나 휩쓸려 살 때가 많습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못한 채, 저 사람이 그렇게 살기에 나도 그렇게 따라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붙잡고 진지하게 물어보면 그 사람도 또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며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방의 대상을 좇고 좇다보면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너무 난해한 말인가요? 

 

하나님을 믿는 일과 예수를 따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나는 하나님의 참 뜻에 접속되어 있는지 또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정말 예수께서 초대한 삶이 맞는지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습 혹은 습관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잠시 멈춰 서서,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맞는지,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진리의 길이 맞는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물론 진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가벼워져야 합니다. 가볍게 그 질문에 답하고 다시 살아내면 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이 질문에 즐겁게 편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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