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

2015. 11. 8. 15:37Essay


교회 앞에도 가을이 왔다

엇그제부터 내리던 비 때문인지 노란 낙엽이 인도를 가득 덮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정신을 가지면 좋으련만 


불과 몇 달전까지만 해도 주중엔 카페 일을 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그리고 매주 하루이상 사랑하는 이와 만났다 

맡은 일이 여러 가지였기에 돈이 유입되는 경로도 다양했다

일주일은 꽉 찬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카페 일도 그만두고 사람이 가득하던 교회도 나왔다

그리고 사랑하던 이도 내 옆에 없다

단독을 나오고 나니 돈이 유입되는 경로도 끊겼다

일주일에 빈공간이 가득하다


누군가 지금의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텅빈 교회의 공간을 고독과 가을냄새로 채우는 중이라고 하면 답이 되려나

지금, 요즘 내 심정이 그렇다


상황만 탓해서는 안되겠지만 지금 내 목회는 '갈 지(之)'자를 그린다

도저히 갈피를 못잡겠다



전도를 하라고 한다

전도가 뭘까? 도를 전하는 거, 근데 그 도는 또 뭘까?

작은 종이 한 장에 담긴 붉은색의 글자들일까

나에게 있어 전도는 예수가 만난 하나님을 나누는 것이다

예수는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하게 사는 것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

문제는 단순하고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이들 속에 개입된 인간의 욕심, 욕망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전도는 말보단 삶을 전하는 것이다


#. 묻고 듣고 답하느라 삶이 더뎌보이지만 난 내 보폭으로 걷는다

그래서 느리고 자주 흔들린다


최근 강남순 교수님이 페북에 올린 글을 보았다

<스마트 폰과의 결혼?'> 관해 썼던 글의 일부이다


"홀로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사유하는 데 필연적인 것이다. 

고독의 시간이란 자기가 자기자신을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다. 

한 개별인의 삶에서 사유의 부재는 타자에 의해 조정 당하고 이끌려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한다. 

탈정치화와 탈역사화된 삶으로 매몰되기 쉬운 것이다. 

고독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이가 타자와 ‘함께 함’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사유의 시간을 엄청 갖는 요즘이다

사유의 고민을 속시원히 얘기 나누고 싶지만

그럴 만한 사람을 가까이서 찾기가 쉽지 않다

다들 너무 바쁘고 챙길 것들이 많아 보인다


혼자 예배 드리고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점심 해결하고 

글 하나 끄적거리고 이제 집에 가련다


교회가 갈수록 추워져 고민이다

친구가 예배 안 드리면 죄라던데 

목사인 나도 예배 드리러 오기 힘드니

이보다 더한 죄인이 어디있겠나 허허 참



#. 에세이 쓰는 빈티지 교회 목사



*instagram: http://www.instagram.com/ss_im_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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