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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에세이] 이런 목사도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발견해야 하는 것일까, 일상의 언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난 목사다. 하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목사는 아니다. 의심 많고 불안해하며 가끔 교계 밖을 기웃거리며 살기도 한다. 그래서 자유로운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또 그렇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나는 그런 목사다.

난 교회 안에만 머무는 용어에 실증이 났다. 긴긴 교회의 역사 안에서 발생된 용어들에 엄청난 거부감을 갖는다. 그 거북한 말들이 나를 더 이상 구원으로 이끌지 못한다. 하지만 주류 기독교인들에게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는, 성전을 유지하는 용어일테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내가 변방으로 밀려나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밀려 났다기 보다는 선택이었고 어쩌면 내가 가야 할 길이 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많이 거칠어진 나를 본다. 대부분 신학을 한 친구들이어서 그런가, 그들과 대화하는 중에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에 자꾸만 거부감이 든다. 그들은 어째서 그런 표현들을 서슴없이, 확신에 찬 듯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여전히 교회 안의 용어들이 그들의 신앙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겠지.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일테지.

이런 용어들이 있겠다. 죄, 구원, 회개, 은혜, 축복, 감사, 헌신, 희생, 보혈, 십자가, 영광, 인내, 찬양, 아멘 등. 요즘 이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때론 폭력적인지 모르겠다. 사실 길고 긴 역사를 경유한 이러한 용어는 참 소중한 유산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남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부정에 부정을 거듭해도 남는 용어들이 있고, 부정을 통해 다시 사용하게 되는 용어도 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돌아 오는 새로운 정의내림.

그래도 기도한다. 내가 잘 못 생각하는 것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내 마음이 너무 거칠고 완고해지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힘을 달라고, 내 생각이 편협해 지지 않도록 기도한다.

내 생각만 옳다고 여기지 않으려 기도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나도 변화될 가능성을 열어 놓으라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 욕망에 귀기울이기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또 자주 걷는다.

나는 이런 목사다. 세상엔 이런 의심 많은 목사도 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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