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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욥이 감춰온 말의 무게

20151004 쓰임교회 주일 설교

 

 

 

욥이 감춰온 말의 무게

 

 

 

<욥기 2장 1-10절>

 

 

 

1.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과 함께 주님 앞에 섰다.
2.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욥을 잘 살펴 보았느냐? 이 세상에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나를 부추겨서, 공연히 그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그는 여전

 

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지 않느냐?"
4.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5.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6. 주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를 너에게 맡겨 보겠다. 그러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아라!"
7. 사탄은 주님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8.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
9.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0.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

 

 

 

쓰임교회 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의미를 숨기며 말을 하기도 하고 정작 하고 싶은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삶이란, 또 그 삶 속에 펼쳐진 상황이란 소설가 김연수씨가 말하듯 마치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같습니다. 어떤 것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은 그러하지만 지금 우리는 ‘예수’라는 이를 길잡이로 삼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욥기의 탄생배경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욥기>입니다. 욥기는 구약성서에 담긴 하나의 깊이 있는 문학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 욥에게 닥친 고난과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세 친구, 그리고 욥의 변론과 엘리후의 중재, 마지막에는 하나님 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께서 욥기의 탄생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그 대목을 대신하여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탄생할만한 삶의 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마치 배경 음악처럼 그 이야기가 탄생한 상황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민담이나 전설 혹은 설화에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걸 분석할 능력이 좀 부족하니까 전문적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욥기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해방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에 돌아온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귀환 이후의 상황은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등의 책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푸른 꿈을 안고 찾아온 고국 땅에서 귀환자들은 절망만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기억 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던 고국산천은 황폐하게 변했고, 성전마저 무너져 예루살렘은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두 손을 들고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오느니 한숨뿐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탓할 대상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무능한 지도자들에게 눈을 흘기기도 합니다. 그래 보아야 곤고한 상황이 해결될 리 만무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이야기입니다.

 

 

 

(중략) 열은 열로 다스리고 차가움은 차가움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슬픔의 감정 또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음으로 슬픔을 다스립니다. 욥기를 읽는 이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삶이 봄날처럼 화창하고 평안한 이들은 잘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삶이 쓸쓸하고 곤고하여 견딜 수 없는 이들이 읽습니다. 욥기를 읽다보면 연민과 비슷한 감정이 일고 어느 사이에 자기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청파교회 홈페이지 발췌

 

 

 

욥기가 쓰여 질 당시의 분위기는 우리가 읽어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듯이 암울하고 어둡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 해 두고 욥기를 읽는다면 우리는 좀 더 깊이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욥에게 닥친 세 번째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는 오늘 본문의 상황 이전에 전 재산을 잃었고(1:13-17), 자녀들 모두를 잃었습니다(1:18-19). 첫 번째와 두 번째 고난과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도 의로운 사람 욥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합니다. 과연 욥은 그의 몸에 저주를 입고도 하나님을 원망하는지 안하는지를 두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성 종기가 나 고생하게 만들었습니다(7). 아마 종기가 나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불편함과 고통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종기가 악성이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났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합니다.

 

 

 

그래서 욥은 종일 잿더미에 앉아 옹기(그릇)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8).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욥의 아내는 너무 속이 상해서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9).”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놀랍게도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10)”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욥기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우리는 욥기의 초반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욥의 믿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의 믿음의 올곧음은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함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욥이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기 정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저자의 종결어미가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는 부분 말입니다. 왜 이 부분을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니면 단순히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기록하지 않고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썼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조금 지나치게 말씀을 확장시켜 읽은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저자가 기록한 저 말의 이면에 욥의 숨겨진 말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진실 된 마음의 말들 말입니다.

 

 

 

욥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욥은 흠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는 자신의 몸에 저주를 받고도, 전 재산을 잃고도, 자녀들 또한 잃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만,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의 마음만큼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마음에 조금의 틈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사실 욥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의 고난과 고통은 굉장했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몸도 완전히 망가졌지만 무엇보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그는 그를 찾아온 세 친구 앞에서 그 동안 황폐해져버린 마음을 모두 토해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성장했으면 더욱 그러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의 말을 가려가며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마음과 절제된 말,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다가가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며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면, 또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진실 된 마음, 진짜 마음을 숨기며 관계를 맺는 게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상처 나고 찢긴 마음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정말 원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정말 정제된 말과 행동만을 기뻐하실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욥은 결국 친구들 앞에 모두 털어 놨습니다. 그의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말입니다. 어쩌면 그가 그 고통을 하나님께 말씀 드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우리의 진짜 마음을 숨기고 거룩한 말들과 행동만을 보이기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가 곧 우리의 삶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삶 또한 신령과 진정으로 그 분께 다가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기쁜 일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힘든 일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정직한 마음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쩌면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고 기다리시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욥의 말 이면에 감춰져있던 그 무겁고 정직한 말을 잘 기억하며 우리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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