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 수요일
"이해할 수 없이 크고 파악할 수 없이 큰 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파악의 범주 안으로 욱여넣어야 한다. 그러면 이해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빠지고 이해할 수 있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담긴다. 훼손과 손실이 불가피하다.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들이 훼손되고 손실되면 안 되는 것들이 손실된다. (...) 그러니까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 채로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욕심쟁이다.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물론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진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앎은 100% 충족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불가능하다. 앎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인식에는 제한이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샘솟는 욕구가 있다. 앎에 대한 욕망이다. 앎에 대한 욕망이 알고자 하는 욕구를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다음 지점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할 때 반드시 훼손과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반드시 훼손되고 손실되고 만다. 이 말은 비단 신이나 자연, 심리나 인체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사람은 누군가에 대해 다 알 수 없다. 이해하고 파악했다고, 믿을 따름이다. 누군가에 대해 다 안다고 여길 경우, 결국 어쩔 수 없이 상대방에 대한 훼손과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