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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산티아고 에세이>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Day 19.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6시간 (23.8Km) 오늘은 동생들과 떨어져 오롯이 혼자이다. 매 끼니와 휴식, 잠드는 순간까지 내가 유일한 나의 벗이 된다. 여행 노선은 각자의 여행 계획과 피로 누적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함께 걷던 나의 동행들은 레온(Leon)으로 미리 건너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예정이다. 며칠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지던 오늘 아침, 곤히 자던 동생들이 인기척에 일어나 잘 걷고 있으라며, 곧 다시 만나자며 응원을 건넨다. 잠깐 헤어지는 것이지만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그 깊이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8. 단순함 속에 담긴 즐거움 Day 18. 단순함 속에 담긴 즐거움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 – 테라딜로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6시간30분 (26.6Km) 산티아고 순례가 주는 매력 중 하나는 ‘단순함’이다. 많은 사람이 입을 모으길, 순례를 하다 보면 내면의 혼란들이 잠잠해지고 차분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보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질문에 까미노에서 얻은 갖가지 경험까지 더해져 혼란은 가중이다. 하지만 이전의 나의 모습과 달랐던 한 가지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났다. 혼란이라는 것이 그것을 경험한 자의 ‘유쾌함’만은 뺏어 가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만큼은 달..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7. 길을 잃는 것도 길을 찾는 과정임을 Day 17. 길을 잃는 것도 길을 찾는 과정임을 프로미스타(Frómista) –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 : 5시간 (20.9Km) 일행 중 가장 늦은 출발을 한다. 며칠 전부터 생긴 마음의 질병이 이 몸뚱이를 계속 바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마음의 독감이 우울이라면, 시기와 질투는 마음에 쌓인 피로일까 아니면 어떤 결핍일까? 적당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묵직한 마음의 피로감이 오늘 출발에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어깨도 여전히 말썽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며 나름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주인이 돌봐주지 않자 많이 서운한 모양이다. 사지(四肢) 사이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통증을 통해 알려준다. 끈이 문제인가 해서 배낭의 끈을 이리저리 조절해봐도 나아지질 않는다..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Day 16. 쉬는 것 자체가 거룩함이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프로미스타(Frómista) : 6시간 (25.5Km) 여전히 발목이 좋지 않은 현정이와 그의 오랜 벗 지혜는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다. 질량은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보존이 되는 걸까? 오늘은 이 두 친구의 자리를 다른 순례자들이 채우게 됐다. 가끔 길 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던 한국 순례자 정아, 제영이가 함께 걷게 됐다. 물론 나의 오랜 동행인 세진이도 함께. 아무튼, 오늘 묵었던 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언덕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언덕의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의 향연이다.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단숨에 넘어볼 생각이다. 출발 전 먹어둔 바나나가 한몫 해 주길..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5. 내 고향은 어디인가 Day 15. 내 고향은 어디인가 호닐로스 델 카미노(Honillos del Camino) –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 5시간 (20.4Km) 카스트로헤리스로 향하는 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뜨거운 햇살은 가려줬지만 습기를 가득 안고 왔기에 땀이 억수로 흐른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안개가 걷히니 길옆으로 난 빨간 양귀비꽃들이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밀과 보리밭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곡예를 펼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을 전해주려 이토록 지저귀나, 기대가 된다. 어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물집’은 쉬었다 걸을 때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젠 휴식마저 신경 쓰인다.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곳이 까미노이기에 이를 악물고 걸어본..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4.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Day 14.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부르고스(Burgos) – 호닐로스 델 카미노(Honillos del Camino) : 5시간 (20Km) 하루 쉬었으니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부지런히 걸어간다, ‘따로 또 함께’를 반복하며. 그런데 오늘은 지금껏 괜찮던 양쪽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진다. 걷는 내내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향한다. 보름 가까이 물집이 잡히지 않았기에 한국부터 챙겨온 소독약과 발가락 양말 등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버리자니 앞일을 알 수 없고 챙기자니 짐의 무게가 늘어나는 곳, 매순간 선택이 압축적으로 다가오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통증을 일으키는 이놈의 물집. 익숙해질 때까지 신경 쓰일 이 물집은 목에 걸린 가시 같다. 완전히 삼키거나..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Day 13. 떠남, 만남, 돌아옴 부르고스(Burgos) : 쉼 오늘은 처음으로 내일의 걱정이 없는 날이다. 이 도시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매력 중 하나는 한 마을에서 이틀 묵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아무리 불편한 것이 있어도 두 번 머무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이라는 시간 밖에 살아낼 수밖에 없는 곳, 잡고 있던 것을 계속해서 놓는 훈련을 하는 곳이 바로 여기 산타아고이다. 순례 중엔 짐을 싸고 푸는 것이 일상이지만 오늘은 일행들과 합의 하에 조금의 여유를 누려본다. 이곳 부르고스(burgos)에서 하루 더 묵기로 결정하고 평소보다 느지막이 눈을 뜬다. 하지만 어제의 무거운 감정이 여전히 내..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2. 슬픔이 주는 침묵 Day 12. 슬픔이 주는 침묵 아헤르(Ager) – 부르고스(Burgos) : 8시간 (23Km) 가장 믿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던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가리산지리산이다. 발목이 아픈 현정이와 그녀의 동행이 되어주는 절친 지혜. 그녀는 현정이를 돌봐주기 위해 개인 스케줄을 조정했다. 그리하여 현재 그녀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을과 마을을 이동 중이다. 의지는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현정이는 너무 속이 상하다. 이곳이 산책하듯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쉽게 떠나지도 못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라도 길 위의 시간을 늘리고 싶은 것이 그녀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순례도 세진, 선영,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동행이 된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마음의 갈피를 잡..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1.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Day 11.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벨로라도(Belorado) – 아헤르(Ager) : 7시간 (28Km) 오늘은 평소보다 더 걸어볼까 한다.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이 아니기에 걱정도 되지만 그냥 이유 없이 그러고 싶은 날이 있다. 생장에서 나눠 준 지도를 보니 오늘은 높은 언덕도 있는 듯한데, 이기적인 주인 때문에 몸이 고생 좀 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다행인 건, 걷기 시작하니 어제와는 다른 길들이 나타나 걸음에 흥이 묻어난다. 오름직한 언덕과 적당한 평지, 작은 숲길이 적절히 분배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까미노의 일상이 그렇듯 출발은 함께 했어도 곧 따로 걷기 마련인데, 앞서 걷던 나는 산 중턱의 어느 Bar에서 숨을 돌리며 일행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영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0. 파도 위에서 균형 잡는 삶 Day 10. 파도 위에서 균형 잡는 삶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 벨로라도(Belorado) : 5시간 30분 (23Km) 내게 설렘을 준 그 친구가 마음에 들긴 들었나보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지만 더 같이 걷고 싶었다. 함께 걷고 싶다는 말은 그녀를 알고 싶다는 욕구와 맞닿아 있다. 이 아침, 앎에 대한 나의 욕구가 그녀를 향해 등 떠밀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와 ‘모험’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용기)과 시도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모험)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생(生)이 주는 충만함을 경험하기 위해 이 두 가지를 마음에 잘 새겨놓으려 한다. 다음 목적지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