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까미노

[에세이] 여행이란 “관상이란 낯익은 것들을 낯선 눈으로 다시 보는 데서 발생한다. 이를 위해 때때로 우린 일상을 벗어나 있을 필요가 있는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도시에 살 때 특별하지 않았던 사소한 사물마저도 시골에 와서 살다보면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기도 한다.” ‘서울이 맞나?’ 가끔 어떤 지하철역에 내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서울의 모든 역을 가 본 건 아니지만 어떤 지하철은 내리면 꼭 서울이 아닌 듯 한 느낌을 준다. 다른 역에 비해 유동인구가 적거나 시야가 트여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역에 가만히 서 있자니 낯선 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다. 막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순례의 여운을 가슴 가득 채워온 그녀는 더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할 지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9. 설렌다면 당신도 청춘이다 Day 9. 설렌다면 당신도 청춘이다. 나헤라(Najera) –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 4시간 (21Km) 산보(散步) 정도였다. 난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미 말한 적 있지만 이 순례는 급히 떠나온 순례였다. 배낭과 등산화의 끈 조절도 잘 할 줄 몰랐으니 준비 없이 떠난 순례가 확실하지 않은가. 까미노를 걸은 지 아홉째 날이다. 이제야 배낭을 몸에 밀착되게 메는 법을 터득한다. 그것도 스스로가 아니라 함께 걷던 동료를 통해서다. 배낭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하나가 되는 느낌! 몸이 훨씬 가뿐해진 느낌이다. 밀착된 배낭의 새로움이 문득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떠나야만 했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지난 시간..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8. 위대한 모험에 나를 던지다 Day 8. 위대한 모험에 나를 던지다. 로그로뇨(Logrono) – 나헤라(Najera) : 6시간30분 (30Km)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틀 후면 이 20세기에, 트로이에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와 라만차의 돈키호테, 지옥의 단테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겪은 것과 같은 위대한 모험에 뛰어든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 길을 떠나는 모험에”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문학동네, p.25) 의 저자로 잘 알려진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를 쓴 후 본업이 있음에도 작가라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는 뿐만 아니라 그 후에 쓴 여러 책들을 통해서 사람이 생..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7. 우연이 주는 즐거움 Day 7. ‘우연’이 주는 즐거움 로스 아르고스(Los Arcos) – 로그로뇨(Logroño) : 6시간 (28Km) 오늘은 피레네 산맥을 넘은 후 가장 오래 걷게 될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놈의 감기는 눈치도 없이 여전히 코와 목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사실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기 가장 꺼렸던 이유 중 하나는 언어 때문이다. 그렇다, 영어 울렁증을 말하는 게 맞다. 이미 일주일 넘게 외국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 울렁증은 어딜 가질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이 긴장감은 길에서 만난 외국 순례자들과 나 사이에 자꾸만 벽을 세운다. 긴 대화를 나누곤 싶지만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접촉’과 ‘회피’라는 모순된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6. 해야 할 숙제를 잊더라도 Day 6. 해야 할 숙제를 잊더라도 에스테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 5시간 (21Km) 처음 오는 곳인데? 에스테야를 벗어나자마자 낯설지 않은 장소가 나타났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과 생수를 나눠주는 수도꼭지가 등장했다.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곳도 까미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기념적인 장소 중 하나이다. 첫 순례이기에 길목마다 무엇이 나타날지 다 알 순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알 필요도 없는 법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산티아고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순례자들에게 와인과 생수를 제공하는 수도꼭지와 마주쳤다. 이름 하여 ‘이라체(Irache) 와인 양조장.’ 양조장은 수도원 내에 있는데, 중세 수도원 내부에 있던 순례..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5.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유대 Day 5.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유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에스테야(Estella) : 5시간 (22.4Km) 어제 묵었던 마을을 빠져나오다보면 아름다운 다리 하나를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의 이름은 마을의 지명과 같다. 마을의 이름이자 다리의 이름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즉, ‘여왕의 다리’이다. 이 다리는 여섯 개의 아치로 이루어져있고 10-12세기 사이 유럽에서 유행한 로마네스크의 양식을 띠고 있다. 전해지기로는 11세기 나바라 왕국(Reina de Navarra)의 여왕이 순례자들을 위해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고도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여왕의 다리.’ 이곳을 오가던 수많은 사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4. 몸이 건네는 말 Day 4. 몸이 건네는 말 팜플로나(Pamplona) –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 5시간 (25.5Km) 비가 온다. 순례 시작 이래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가방 저 밑에 넣어두었던 비옷을 꺼내 입고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는다. 순례자를 향해 내리쬐던 스페인의 무심한 햇살도 먹구름 앞에선 그 힘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무거운 가방을 매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체온이 잘 오르지 않는다. 컨디션도 영 좋지 않아 오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갈팡질팡한 마음이 불안감에 속도를 높인다. 그래도 계속 걷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걸을 것이냐, 멈출 것이냐, 두 선택만 있을 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중간 중간 몸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보니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Day 3. 역시 삶은 만남인가 수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 5시간 30분 (21Km)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이든 순례든 일상을 벗어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모든 존재가 특별하겠지만 정말 특별한 한 사람을 이곳 팜플로나에서 만나게 된다. 수비리부터 동행하게 된 친구들과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끼니 해결을 위해 마을 번화가를 어슬렁거린다. 몇 분 후 현정이가 낯선 한 남자와 접선을 한다. 누구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그 접선에 동참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 체형은 아니다. 콧날은 날카롭고 다리는 매우 길었다. 그는 5월 산티아고 출발자 단톡방에 있던 오승기라는 청년이다. 단톡방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그가 외국사람인지 몰랐던 건 ..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2. 한 걸음 내딛을 용기 Day 2. 한 걸음 내딛을 용기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수비리(Zubiri) : 5시간 30분 (21Km) 첫날의 험난함 때문이었을까? 오늘 수비리로 향하는 길은 좀 수월하다. 하지만 단정 짓기 어려운 건 아직 몸이 건네는 말을 잘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국에서의 긴장과 낯선 곳을 걸으며 오는 땅의 전율이 몸 안에 질서 없이 축적되는 기분이다. 완벽한 준비가 세상 어디에 있겠나 생각하며 계속 걸어본다. 생각의 꼬리가 정체 없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마을로 초대하는, 마을 초입의 다리가 낭만적인 수비리(zubiri)에 도착한다. 혼자 떠난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는 계속 불안한 상태였고 불안을 잠재우고자 동행을 찾기 시작했다.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더보기
<산티아고 에세이> Day 1.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음을 Day 1.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생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 –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8시간 30분 (27.1Km) 순례의 시작은 파리(Paris)부터였다. 잠시 머물던 파리의 한 민박에서 한국에서 온 세진이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하루 먼저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였고 그와 파리에서 잠깐의 일정을 보낸 후 다음 날 헤어졌다. 세진이와 이별한 후 파리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내고 있는데, 그로부터 문자가 왔다. 다짜고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형, 디져요.” 순간 불어인가, 했지만 그 말의 결론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반드시 마실 물과 먹거리를 든든히 챙기고 출발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세진은 이른 저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