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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1부] 몸 안에 담아내는 사랑

20141228 청파교회 1부 예배 설교

 

몸 안에 담아내는 사랑

 

<누가복음 1장 46-56절>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48.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Lumix gx9 / 20mm]

수수께끼: 4, 12, 52, 365는?

 

수수께끼 하나 내보겠습니다. 이것은 숫자 4로도 표현 가능합니다. 12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52라 부르기도 합니다. 누구는 365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답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1년이라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간을 4계절로 말하기도 하고, 열두 달로 말하기도 하고, 52주라고 말하기도 하고, 365일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주, 52주가 되는 날입니다. 벌써 2014년 한해의 끝에 도착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한 해를 보내셨고 또 어떤 한 해를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주일 이 자리에 밝혀져 있던 네 개의 촛불이 성탄을 맞아 다섯 개의 촛불로 번져갔고 지금은 모두 꺼진 이 촛불이 우리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간 불빛을 이어받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성경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제 마음에 울림을 주는 이야기 하나를 읽었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며 교회학교 선생님들께 나눠드렸던 묵상집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22일자 묵상의 한 대목이었습니다. 그 날의 묵상집 본문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마리아에게 전달 된 천사의 메시지

 

누가복음 1장은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 그리고 ‘마리아’와 그녀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말씀은 “마리아의 찬가, 마리아의 찬양”에 관한 부분입니다.

 

마리아는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로 천사의 이야기를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기에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못 느낍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살던 유대사회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될 경우 길을 가다 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랬기에 마리아를 향한 천사의 메시지는 “축복의 메시지”였다기보다는 어쩌면 “저주의 메시지”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놀라운 노래를 부릅니다. 그녀는 사회 변혁적인 생각과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냅니다. 솔직한 우리의 심정으론 마리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고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오늘 설교준비의 모티브가 됐던 묵상가의 묵상도 이러한 마리아의 태도가 놀랍고 의문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고 양육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지 묵상하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묵상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글을 쓰신 분이 여자분 이셨던 것 같습니다. 묵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찬찬히 살피자 과거의 임신과 출산, 양육과정의 힘든 감정들이 깊은 묵상을 피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잉태와 출산, 양육의 과정이 기대와 흥분과 기쁨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배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묵상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과정, 그 이물감과 낯섦을 견디고 적응하는 과정이며, 신체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며, 자기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가 되는 일과 아이에게 나를 내어주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남성과 본질적으로 다른 여성의 몸

 

이러한 일들은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입니다. 뭐 어떤 이는 요즘 세상에 남자도 임신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그 사람의 믿음에 맡기겠습니다. 남자는 여성의 자궁, 태를 가늠할 뿐이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몇 해 전부터 TV에서는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을 통해 아버지가 된다는 것과 남자가 하는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몸을 갖고 태어난 남성은 여성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일

 

묵상가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일은 ‘낯선 존재에게 내 몸 가장 깊고 안락한 곳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물감을 견디고 적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통스런 입덧을 견뎌 냅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신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다는 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한 듯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는 것은 나의 가장 깊고 안락한 곳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이를 우리의 삶으로까지 확장시켜본다면,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던 내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고, 너무 익숙해서 무뎌져버린 삶의 패턴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근데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본인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았다고 쉽게 바뀔 수 있을까요? 그건 더 어렵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가 뱃속에 있는 다른 생명의 이물감을 오랫동안 견디고 적응해야하듯이 우리는 우리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안락한 삶의 패턴을 벗어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합니다. 단숨에 이뤄지는 일은 없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삶의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진리입니다.

 

법륜의 이야기 속에 담긴 나를 바꾸는 훈련

 

여러분, 법륜 스님이라고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분이 세계 100여개 도시를 돌며 만난 사람들과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 중에 지난 11월10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구글(Google) 본사에서 직원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길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과 많이 닮아서 한번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이야기와 질문이 오고 가는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행복해지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욕심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법륜 스님은 대답합니다. “욕심을 버리기 어려우면 움켜쥐고 괴로워하면 됩니다. 괴로운 것이 심하면 내려놓게 됩니다. 어떤 물건이 뜨겁다고 합시다. 내가 이것을 쥐었을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앗 뜨거워’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걸 쥐고 ‘뜨거워 죽겠어요.’하니 ‘내려놓으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랬더니 이젠 ‘어떻게 내려놓아요? 방법을 알려주세요.’라고 묻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못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못 내려놓습니다. 방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뜨거운 줄 알면 놓아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꾸 ‘방법 좀 알려주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수 없이 ‘왼손으로 옮겨라’라고 했더니 해결이 됐습니다. 그러자 왜 진작 안 알려줬냐고 말합니다. 뜨거운 것도 해결하고 내가 가지고 있으니 해결된 것 같지만 그런데 이젠 또 왼손이 뜨거워 졌습니다. 또 뜨겁다고 하기에 그러면 무릎 위에 놓으라고 말합니다. 당장 두 손도 안 뜨겁고 내가 아직 가지고 있기에 좋은 해결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좋은 방법입니까? 다 필요 없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본질을 꿰뚫어야 합니다. 방법을 몰라서 못 내려놓는 게 아니라 놓기 싫은 겁니다.”

 

법륜은 이어서 이야기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어떻게 담배를 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안 피우면 된다.’입니다. 그런데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끊어요?’ 이 말은 피우고 싶다는 말이에요. 의식은 끊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피우고 싶은 거예요. 이것은 습관화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기에 금방 해소가 안 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무의식이 놀랄 정도로 강력한 태클을 거는 겁니다. 예를 들면 담배 필터에 전기 장치를 해서 입에다 대면 충격이 가해져 그냥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게 합니다. 이렇게 몇 번 되풀이되면 무의식에서 거부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충격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것도 잘 안 고쳐지죠. 정말 고치고 싶으면 화 한번 낼 때마다 전파상에 가서 전기 충격기로 몸을 지져버리는 거예요. 다섯 번만 하면 화가 올라오다가도 몸이 벌벌 떨려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고칠 필요가 뭐가 있느냐?’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안 고쳐지는 거예요.”

 

“두 번째 방법은 꾸준히 하는 겁니다. 의식으로 결정한 것을 3일 만에 그만 두지 말고 100일, 1000일 이렇게 지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의식이 무의식이 됩니다. 뭐든지 오래되면 습관화되기 때문에 습관화되었다는 건 무의식화 되었다는 겁니다. 불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형성된 거예요. 그러니 변화합니다. 이것을 변화시키려면 오랫동안 형성된 거라 사실 좀 어렵습니다. 어릴 때 형성된 것일수록 더 변화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길, 꾸준히 하거나 좀 더 세게 태클을 걸거나 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변화를 바라기만 하고 아무런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할 것, 좀 더 강력하게 할 것! 지식으로 이해하는 건 의식이 하는 것이기에 아무리 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나고 마음에서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쉽게 일어납니다. 감동했다는 것은 무의식에 영향을 줬다는 것입니다.”

 

이물감을 견디고 고통스런 입덧을 견딤

 

물론 이 이야기는 “욕심을 어떻게 버리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긴 했지만, 여기에 삶과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핵심적인 키(key)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총이 사람을 저절로 변화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하나님의 은총은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그 동기입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성찰하는 가운데 나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이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저는 이 분들이 내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또한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내년은 그저 마음으로만 사는 한해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밴 엄마로써도 그랬고, 시대적 상황으로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신의 몸 안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온전히 담아내셨습니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우리의 몸 안에 잉태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삶의 주인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나를 바꾸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길 걷기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함께 걷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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