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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그 날이 오면

20141026 청파교회 1부 예배 설교

 

그 날이 오면

 

<미가 4장1-5절>

 

 1. 그 날이 오면, 주님의 성전이 서 있는 주님의 산이 산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솟아서, 모든 언덕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우뚝 설 것이다. 민족들이 구름처럼 그리로 몰려올 것이다.

2. 민족마다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 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3.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4.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5. 다른 모든 민족은 각기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 우리의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것이다. 

 

 

기다림을 앞당기는 방법

여러분들께서는 뭔가를 애타게 기다려본 경험들이 있으실 겁니다. 직장인들 경우는 주말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테고, 여행을 계획하신 분들은 여행갈 날짜를 기다릴 테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께서는 자식의 휴가나 제대를 애타게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최상의 레벨, 역대급 기다림은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이의 기다림일 것입니다. 뭐,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하는 사람은 연인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시간만큼 설레고 긴장되는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사람과 약속시간을 정해 만나는 거면 어떻게든 기다리면 될 텐데, 만약 약속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해결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만남을 앞당기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직접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옮겨 보고 싶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저는 누구나 잘 아는 이 말 속에 신앙의 진리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예언서 <미가>

오늘 우리가 함께 듣고 읽었던 말씀은 <미가>입니다. 미가는 소예언서(Minor Prophecy)에 속합니다. 소예언서라 함은 말 그대로 작은 예언서를 뜻합니다. 특별히 대예언서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가 우리가 흔히 부르는 예언서에 속합니다. 예언서를 나누는 기준은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데, 오늘 본문인 <미가>는 7장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예언서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작은 두루마리 안에 담긴 내용은 아주 거친 듯하면서도, 희망적입니다.

 

예언자 미가의 메시지

예언서의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장차 도래할 “심판의 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마지막 “그 날”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심판은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를 가장 충격에 빠뜨린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이 “심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의 입을 빌려 아주 매섭고 날카롭게 심판의 말들을 쏟아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합니다. 과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신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미가> 3장1-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그 때에 내가 말하였다. 야곱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2.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3.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4. 살려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을 날이 그들에게 온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그렇듯 악을 저질렀으니,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들, 높은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죄악을 하나하나 세고 계십니다. 사실 <미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은 종교적인 죄에 대한 심판은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행한 사회경제적인 죄를 탓하는 것입니다. 궁핍하고 가난하며 약한 사람들에게 부자나 지도자나 힘 있는 자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저지른 죄악을 문제 삼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조금 동떨어져 보입니다. 우리보다는 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말씀이 우리와 상관없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 또한 이 말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설자리를 뺐거나, 누군가의 자유를 뺐고 있다면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말씀이 됩니다. 중고등부 친구들을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표현해 보자면, 우리 친구들이 누군가의 따돌림과 고통스러움을 즐거워하고 있다거나, 힘이 없고 어수룩해 보이는 친구들을 죄책감 없이 이용하고 있다면 우리 친구들 또한 이 말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예언자들의 입을 빌어 하셨던 말씀의 참 뜻은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섭게 질책하셨지만,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실 때를 가리켜 “그날이 오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① 모든 민족이 주님을 따르고자 성전으로 모인다고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② 주님께서 각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갈등을 해결해 주실 거라고 말합니다. 그 날이 오면, ③ 사람마다 나무 아래 앉아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날이 오면, ④ 다른 민족은 자기들만의 신을 섬겨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미가>서가 쓰였던 그 때, 실제로 그 날이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날을 기대했고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당시의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미가>가 말한 “그 날”을 상상해 봅니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전쟁이 그치고, 모두가 각자 정해진 그늘 아래서 평화롭게 사는 세상 말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는 방법

제가 서두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기다림”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 그 사람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가>서에 나타난 “그 날”이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우리가 앞당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을 각자의 시간 속에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오늘 본문의 3절 말씀이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라는 말씀 말입니다. 전쟁도구였던 “칼”을 농기구 “보습”으로 바꾸고, “창”을 “낫”으로 바꾸는 이 말씀이 마치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비유 같아보였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전쟁에 쓰이는 “칼”과 “창”은 어떤 도구입니까? 상대를 베이게 하거나 찌르는 도구입니다. 상대를 다치게 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보습”과 “낫”은 어떤 도구입니까? 땅으로부터 먹을 것을 생산하게 하여 당신과 나의 삶을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전쟁과도 같은 삶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자꾸만 칼과 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고등부 친구들도 끊임없는 경쟁과 입시부담 속에서 자꾸만 자신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큰 실패이며 잘못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가는 길을 누가 막아선다면 우리는 우리의 날카로운 모습 그대로 상대방과 부딪칩니다. 이 날카로움은 상대를 찌르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찌름은 먼 길을 돌아서라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상대를 찌른 칼과 창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보습”과 “낫”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그 날”을 앞당기는 길이라면 더디더라도 마땅히 가야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함께 걷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 하나 변화시키는 삶

그 날이 오면, 이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은 손 놓고 기다린다고 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이 땅의 변화는 내가 변화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그 날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바로 지금부터 우리 삶의 칼과 창을 보습과 낫으로 바꿔야합니다.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보다는 몸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몸이 바뀌면 우리의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우리 주위가 변화가 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있는 직장에서, 내가 있는 교회에서, 내가 있는 가정에서, 내가 있는 공동체에서부터 나를 바꾸는 연습을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알고만 있는 것을 몸으로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 세상 살면서 나 하나 변화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사람”의 또 하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교개혁주일>이기도 한 오늘! 나 자신의 개혁부터 이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주님의 그 날을 앞당기는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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