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파 Note

[청파 Note]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20140921 청파교회 1부 예배 설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마가복음 6장 7-13절>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을 주셨다.
8.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9.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1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거든, 그 곳을 떠날 때에 너희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서, 그들을 고발할 증거물로 삼아라."

12.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서 병을 고쳐 주었다. 

 

[Lumix gx9 / 14mm]

우연히 마주친 사람

 

추석에 대부분 고향이나 친척집을 다녀오셨을 겁니다. 물론 서울을 지키고 계신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말입니다. 저도 3시간을 달려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매해 명절이 그러하듯, 이번 추석에도 한동안 보지 못했던 고향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전부 교회 청년들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교회 친구들만큼 오래 연락이 되는 사람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지금 ‘소 닭 보듯이’ 쳐다보고 지내는 중고등부의 관계가 가장 롱런(Long Run)하는 관계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간만에 모인 청년들과 어디에 갈까 고민하다가 동해의 명소인 ‘망상해수욕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여름의 끝물을 느끼러 갔습니다. 바다의 향기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고, 대중교통을 타고 왔던 우리는 왔던 교통편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동해에 살았으면서도 동해 대중교통시간을 모르던 우리는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버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마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까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던 그 정류장에 조금은 행색이 특이한 젊은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오셨습니다. 캡 모자를 거꾸로 쓰시고, 분홍색 앞치마를 하시고, 한 손에는 김치통 같은 것을 들고 계셨습니다. 살짝 경계를 하고 있는 저희와 몇 마디를 나누시더니 버스가 오기 전에 자기가 부른 택시가 먼저 오면 같이 타고 시내로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정체가 긴가민가했던 그분이 드디어 자신을 소개하시길 정류장 바로 뒤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급히 시내에 나갈 일이 있는데, 자기랑 같이 합승해서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1/n로 내면 저희도 좋을 거 같아서 살짝 경계를 풀고 버스보다 먼저 오게 된 택시를 함께 탔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그분께서 택시비를 전부 내시며 나중에 동해 놀러 오면 자기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선 김치통을 들고 유유히 사라지셨습니다. 얼떨결에 요금의 잔돈까지 받은 저희는 돈을 벌어가며 목적지까지 오게 됐습니다. 다시 택시비를 달라고 하실까 봐 끝까지 동해사람이 아닌 척은 했습니다만, 우연한 만남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뭔가 기분 좋은 느낌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설교의 서두가 길긴 했습니다만, 오늘 제가 준비한 설교는 추석 때 만난 이 아주머니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이와 비슷한 ‘우연한 만남’이 기억에 남아 이야기를 해드리려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도 반복되면 ‘인연’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와 같은 신앙인들에게 ‘우연’이라는 말은 조금 낯선 말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발생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 말이 선뜻 좋은 기분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표현이 너무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특히 안 좋은 일에 대해 누군가 ‘당신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다’라고 한다면 이보다 일방적이고 편협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의 자리에 서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나온다면 그리 나쁘게 볼 표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주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그 짧은 만남 이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로 들어서는 길

 

저는 지난 주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둘레길 3코스를 걸어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인월에 있는 지리산터미널에 내려 지도 어플을 돌려가며 길을 찾아 걷고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걷고 있는데 한적한 가게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시더니 저희를 보고 둘레길을 찾아 걷는 중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희는 당당히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이 길로 걷는 게 아니라 저 뒤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계속 도로로 걷고 있던 우리는 현지 아주머니 말씀을 일단 믿고 방향을 꺾어 지시해 주신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가지 않아 둘레길 안내소도 나오고 3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도 보였습니다. 너무 멀어져서 인사를 드릴 순 없었지만, 바른 길로 알려주신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저희는 땡볕에 한참 도로로만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장에 알려주신 길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길이 맞나 조금은 의심하며 그 길을 걸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는 마치 주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방식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이에 맞게, 역할에 맞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동일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같은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또 같은 학교나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일상의 삶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닮은 사람은 있어도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듯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겪는 동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삶의 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땅에 태어났고, 생명을 부여받은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만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온통 모호함뿐이고,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수많은 해답은 있는데 정답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잡게 됐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삶의 길잡이로 여기고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이 사셨던 삶을 따라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가르침과 삶, 그 길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 길은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의 정반대길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둘레길의 시작점부터 잘못 들어섰던 저희 일행들처럼 뒤를 돌아 다시 걸어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돌아섰다고 하여도 당장 새로 걷는 길에 확신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길을 돌아서 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따라 다시 걷기는 했지만 당장의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저희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 길이 어떠한 길이든 돌아설 용기를 갖고 또 그 길을 묵묵히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심이 드는 그 마음마저도 품어 안고서 말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길잡이 등산객

 

저희가 걷던 둘레길 3코스는 강둑에서 시작해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는 코스였습니다. 저희 일행 모두 3코스는 처음이라 설렘과 동시에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걸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들어 말수도 줄었고 묵묵히 걷기만 했습니다. 둘레길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아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살짝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등산객 한 분이 갑자기 저희를 불러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리로 가면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 그리로 가면 제 때 내려올 수 없다며 지름길을 알려주셨습니다. 3코스로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산하는 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당한 적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잘못된 길로 들어설 번한 저희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그 등산객과의 만남이 또한 제 가슴속에 남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우리 삶에도 이런 길잡이가 되는 선생이나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민중들의 랍비, 즉 선생이셨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선생님’의 ‘선생(先生)’은 어떤 뜻입니까?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뜻을 갖고 있지만, 이보다는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걸어가신 분’이라는 뜻이 더 와닿을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주위에 ‘선생’이라고 부를만한 분들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가야 할 길을 물을 그런 사람 하나 있으신가요? 물론 이 사람은 반드시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남녀노소, 지위를 막론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주위에 이런 사람이 없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미 누군가의 선생이 된 사람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됐다는 생각보단,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산 것뿐이라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과 함께 이런 길잡이가 되는 이웃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 서로가 바로 그런 이웃이며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하셨던 당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다만 신발은 신되, 옷은 두 벌 가지지 말라(막6:8-9)" 수련회를 가보거나 여행을 다녀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를 말입니다. 달랑 지팡이 하나와 신발만 신고, 여벌의 옷이나 먹을 것, 돈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거의 거지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의 의미를 압니다.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위한 당부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살아갈 삶 전반에 대해 하시는 당부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7절의 말씀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씀 말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자신을 열어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나 만나는 사람, 주위에서 들리는 소식들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삶

 

오늘 본문 마지막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했고, 많은 귀신을 쫓아냈으며, 수많은 병자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마땅히 살아내야 할 삶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입니다. 회개를 선포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는 행위들은 쉽게 말해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봄을 알렸던 한 해가 벌써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여물어가는 이때에, 우리의 삶도 매일매일 깊어지고 여물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살롱에서 나누는 말씀 한잔!

www.youtube.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