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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1부] 비틀거리며 하나님께 가는 길

20140727 청파교회 1부 예배 설교

 

비틀거리며 하나님께 가는 길

 

<욥기 7장11-15절>

 

11.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분하고 괴로워서,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12. 내가 바다 괴물이라도 됩니까? 내가 깊은 곳에 사는 괴물이라도 됩니까?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를 감시하십니까?

13. 잠자리에라도 들면 편해지겠지, 깊이 잠이라도 들면 고통이 덜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만,

14. 주님께서는 악몽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무서운 환상으로 저를 떨게 하십니다.

15.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흔들리는 바늘의 나침반

 

2010년에 나왔던 드라마 중에 아주 재밌게 봤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제목은 <성균관 스캔들>입니다. 박유천, 박민영, 송중기, 유아인이 성균관 4인방으로 나오는 드라마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에서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말고도 시사 하는바가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조선 22대 왕이었던 정조와 좌의정(좌상)의 아들과의 대화였습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던 대화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나침반을 건네며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님이 하셨던 말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그 분도 나침반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여윈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우리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고가 굳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신앙인들을 위한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신앙인의 믿음에 대한 부분이 그러했습니다. 의심 없는 믿음보다 여백이 있는 믿음이 훨씬 성숙하고 아름다운 믿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빈틈없이 완고한 믿음은 오히려 ‘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을 품을 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이런 상황에 놓여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이라는 인물입니다. 

 

욥이 받은 세 가지의 테스트

 

서른아홉 개의 구약성서 가운데 <욥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욥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줘서 그렇기도 하지만, 묘하게 우리 신앙인들의 삶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욥기>는 ‘의로운 사람에게 닥친 고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의 소개는 <욥기> 1장1장에 아주 잘 나타나있습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욥1:1)’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많았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하게 됩니다. 욥을 테스트 합니다. 과연 그가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욥1:9)를 두고 말입니다. 

 

첫 번째 테스트는 그의 재산을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욥의 가축을 빼앗고, 종들을 죽여 버립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 떼와 목동들이 죽게 됩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낙타 떼를 훔쳐가고, 종들을 죽여 버립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재산 모두를 잃었습니다. 

 

두 번째 테스트는 그의 가족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욥은 그의 재산을 모두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들과 딸들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큰 아들 집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욥의 모든 자식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에게서 나올 말은 뻔해보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갑니다. 욥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1:21)." 말도 안 되는 고백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의 테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욥의 재산과 자녀들이 아니라 욥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악성 종기가 났습니다(욥2:7). ‘악성 종기’라 함은 온 몸에 지독한 염증이 생겨 가려움을 유발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얼마나 가려웠으면 기와조각을 가지고 온 몸을 긁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욥은 아내를 질책할 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욥2:10). 

 

드디어 욥이 말문을 열다. 

 

그 때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소식을 듣고 찾아옵니다. 당시 욥의 꼴이 어땠냐면 세 친구가 욥을 보았어도, 그가 욥인 줄 모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욥을 알아본 친구들은 슬픔과 충격에 일주일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욥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함께 슬퍼해준 친구들 덕분인지 욥은 참아왔던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욥3:2). 그는 하나님을 향해 그동안 참아왔던 슬픔과 원망과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았던 본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세상에서 욥만큼 흠이 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물론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욥기>를 하나의 문학으로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한 문헌에 가깝습니다. 그럼 과연 <욥기>는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다양한 깨달음을 주지만, 이곳에 모인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어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께 분노를 표현하면 안 되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

 

우리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미지는 우리가 자라온 배경이나 삶의 자리, 자신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열해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의심이 들 때 무조건 감추고 모른 척 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종로3가로 가는 지하철 5호선

 

제가 다녔던 대학교는 서대문에 있습니다. 혹시 서대문역은 지하철 몇 호선인지 아십니까? 5호선입니다. 서대문역에서 상일동/마천 방면으로 가려면 광화문역과 종로3가역을 지나게 됩니다. 출근시간이나 퇴근시간에 광화문과 종로3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기도 하고 많이 내리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사람들 사이에 서 있노라면 자세도 어정쩡하게 되고 몸에 무리도 많이 가게 됩니다. 아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광화문역에서 종로3가역으로 가다보면 반드시 두 역 사이에서 지하철이 한번쯤 심하게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처음엔 그런 흔들림이 굉장히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괜히 휘청거려 뒷사람들의 발을 밟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심하게 흔들리고 나더니 제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불편했던 자세들이 바르게 되고, 각자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모습이 신앙인의 모습과 같아보였습니다. 건강한 신앙인이란, 또는 성숙한 신앙인이란 의심과 여백 없는 믿음을 가진 이가 아니라, 크고 작은 비틀거림을 경험한 이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비틀 거리는 욥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끔찍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참아왔던 것들을 하나님께 솔직히 표현하면서부터 그와 하나님의 관계는 깊어져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자 하나님 또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감정들을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침묵하던 하나님께서 욥을 질책하시긴 했지만, 어쩌면 욥에게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미로와 같은 인생과 신앙

 

신앙인의 삶을 가끔 ‘미로’에 비유하곤 합니다. 지금 내가 중심을 향해 걸어가지만, 가끔은 그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들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중심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와도 너무 당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길 또한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며 하나님께 가는 신앙인의 길

 

말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와 같은 생각 말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보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다행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인생의 나침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심이 들고,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이 밉고 원망스러운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렸던 것처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내 생각과 마음을 솔직히 하나님께 올려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기분과 생각이 들더라도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십시오. 비틀거리며 걷는 그 길 끝에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사람과 사람이 알아가는 데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듯이, 조바심 내지 마시고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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