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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적 증오와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식은
그것의 유사자인 인종적 관용을 통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욱 심한 증오이지만
적당히 정치적인 증오 - 일반적으로 정치범을 겨냥한 증오 - 이다.
슬라보예 지젝,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인간사랑, p.25
증오와 관용은 서로 대립개념이 아니다. 관용의 내면에는 자신도 모르는 증오가 전제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종적 증오를 '누가' 만들어내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이 부분을 건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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