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지젝] 까다로운 주체 글귀 모음

 

1. 권력과 저항(대항-권력)은 서로를 전제하고 생성한다. 즉 부정한 욕망을 범주화하고 규제하는 바로 그 금지 조치가 사실상 그런 욕망을 생성한다. 성적 유혹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피해야만 하는 상황들을 상세히 기술하는 가운데 어떻게 유혹이 작동하는가(단순한 미소, 눈짓, 방어적 손동작, 도움 요청 등이 어떻게 성적 암시를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범한 지식을 드러내는 그 전설적 인물인 초기 기독교의 금욕주의자를 생각해보면 된다. (주체는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자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이런 압제의 산물로서 출현한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b, p.402

 

2. 도착증자는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타자에 대한) 답을 알기 때문에 무의식을 배제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의 위치는 영원하고도 구성적인 (자기-) 물음의 자리이다 : 타자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지? 타자에게 나는 무엇이지?

 

도착증의 닫힌 원환고리에 사로잡힌 주체를 어떻게 히스테리화할 것인가(어떻게 그에게 결여와 물음의 차원을 주입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오늘날의 정치적 무대를 보건대 더욱 절박해진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b, p.397

 

3. 우리는 여기서 스크라테스의 상기reminiscence와 기독교적 반복repitition이라는 유명한 키에르케고르적 대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크라테스의 철학적 원리는 상기의 원리다. 진리는 이미 내 안에 깊숙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단지 내 영혼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만 하면, 즉 '나 자신을 알게' 되기만 하면 된다.

 

반대로 기독교적 진리는 계시의 진리이며 상기의 정반대다. 진리는 내속적이지 않으며,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의 (재)발견인 것이 아니며, 하나의 사건, 즉 나의 존재 기반 그 자체를 산산이 부수는 외상적 조우를 통해 외부로부터 나에게 폭력적으로 부과되는 어떤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내적 자기발견과 정화를 위한 영혼의 여행으로서 뉴에이지 영지주의Gnosticism적으로 재정의하는 것은 심히 이단적인 것이며 가차없이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도서출판b, p.346-347


 

이작가야

문학과 여행 그리고 사랑 💜

www.youtube.com

 

JH(@ss_im_ho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팔로워 189명, 팔로잉 168명, 게시물 428개 - JH(@ss_im_hoon)님의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보기

www.instagram.com

 

기억의 저장소 : 네이버 블로그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공간

blog.naver.com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