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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하루, 산티아고

<산티아고 에세이>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Day 20. – Day 21. 그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 – 레온(León) 

: 9시간 30분 (46.7Km) 

 

 

 

동생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모레다. 하지만 지난밤 잠들기 전에 생각이 달라졌다. 이틀에 나눠 걸을 거리를 하루로 단축 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나의 동행들은 레온에 있다. 그리고 나와 그들 사이에는 까마득한 거리가 놓여있다. 

 

레온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전인 어스름한 새벽, 나는 왜 무리하면서까지 단번에 그곳으로 넘어가려는지 궁금했다. 질문은 나름 진지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 시간 속에서 몹시 외롭던 것이다. 더구나 혼자가 된 이때 머물게 된 마을이 작고 조용하며 사람도 보이지 않는 마을이라니. 여러 상황이 중첩되었기 때문일까? 혼자된 기분은 평소보다 배가 된다. 

 

물론 외로움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모르진 않지만 그래도 레온으로 빨리 가려는 걸 보면 혼자보단 여럿이 있는 게 더 나은가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혼자 살긴 힘들다. 

 

동트기 전 출발한 걸음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멈춰섰다. 거의 10시간 만에 목적지 도착이다. 지금까지의 순례 중 가장 긴 거리를 걸었기 때문일까? 무릎에 통증이 유별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끼니를 해결할만한 적당한 식당도 찾지 못해 과일로 대충 위를 채우다 보니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좀비처럼 레온으로 입성하는 나를 산책 중이던 동생들이 존경의 안경을 쓰고 맞이해 준다. 세상 반가웠다. 딱 하루 못 본 것뿐인데 무척이나 보고 싶었나 보다. 

 

그날 알게 된 사실은 현정이의 발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는 것이다. 같이 걷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라도 함께 걷자고 제안했던 나였었기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동안 아픈 걸 꾹 참고 함께 걸어주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다시 한번 되뇌는 말이지만, “그저 가까이 혹은 멀리에서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마음의 유대는 더 특별하게 완성된다”라는 김효정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김효정, 『미래에서 기다릴게』, 허밍버드, 2014, p.42) 참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힘들지만 벅찼던 하루를 마무리하다 전에 휴대전화 속에 메모해 두었던 시 한 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문재 시인의 시였는데, 시 화자는 ‘자유’와 ‘고독’의 개념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반복해서 읽어도 또 누군가에게 소개해도 좋을 시 같아 이곳에 옮겨 적어본다. 여전히 홀로됨이 두려운 내가 머지않아 자유 속에서 고독을, 고독 속에서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할 수 있길 함께 바라본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p.22-23)


 

 

이작가야의 이중생활

문학과 여행 그리고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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