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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삶에 깃든 은총

20170813 쓰임교회 주일설교

 

삶에 깃든 은총

 

<마태복음 14장 22-33절>

 

21.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서,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22. 무리를 헤쳐 보내신 뒤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이미 저물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홀로 거기에 계셨다.

23. 제자들이 탄 배는, 그 사이에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24.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26. 제자들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

27.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28.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30.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32.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

33.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풍랑을 마주친 제자들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비가 오더니 더위가 조금 꺾인 듯합니다.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자다보면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옴을 느낍니다. 입추를 지나더니 신기하게도 시원함이 잠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상상력을 크게 자극하는 본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니지 않는 분들마저도 한 번쯤은 들어본 말씀일 텐데요. 이 말씀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말은 우리가 강이나 바닷가를 갔을 때 물을 보며 그 위를 걷는 상상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 사건이 있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건이 있은 후 그곳에 모였던 많은 무리들을 돌려보내고 홀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 사이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먼저 가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던 중에 제자들이 탔던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육지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 때문에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께서는 우연히 지나가면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풍랑을 만난 배 바로 근처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당연히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예수를 보고 제자들이 겁에 질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같아도 똑같이 놀랐을 것입니다. 어둠이 드리워진 바다 위 풍랑을 뚫고 한 사람이 물 위를 걸어온다니. 상상만 해봐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런 예수를 보고 유령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너희의 스승 예수이니 두려워말고 안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얘기가 끝나면 좋았을 텐데 마태복음의 저자는 베드로를 앞세워 이야기를 더 지속시킵니다. 

 

예수 앞에 당당히 요구했던 베드로

 

제자들을 대표해 베드로는 말합니다. “당신이 주님이 맞으시다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사실 저희는 베드로의 이 말을 듣고 쉽게 믿음 없는 자의 표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어떠한 훈계의 말도 덧붙이지 않고 “오너라.”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예수를 믿는 자의 마땅한 호소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관해 당당하게 여쭈어보는 용기. 저는 이런 의심과 불안을 믿음 없는 사람의 근거로 보는 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하나님 앞에 왜 믿음이 없느냐고 애정 어린 질책의 말을 들을지언정 그들의 의심 가는 질문들을 생각 속에 가두어두지 않았습니다. 도마가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으며 시편의 저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질문하지 않은 자는 어떠한 응답도 들을 수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곳은 질문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는 자문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수용소의 격언 중 하나였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은 우리에게 모든 예측이 헛되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도, 그 어떤 말도 미래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뭐하러 고통스럽게 앞일를 예측하려 하겠는가? 우리는 고참 해프틀링이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는게 우리의 지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p.163)

 

물론 이 이야기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심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삶에 숨겨진 주님의 은총

 

물 위로 걸어오라는 예수의 말에 베드로는 용기를 내 풍랑 위 물가에 발을 내 딛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어 예수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 또다시 거센 바람이 그에게 불어왔고 무서움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는 주님을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를 붙잡으며 그제야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그런데 예수의 질책은 베드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그런 질책이 아닙니다. 애정 어린 안타까움의 질책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의 의심을 했습니다. 예수가 물위에 등장하셨을 때 본인이 주님이심을 드러내 보이라는 의심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본문에 자세히 묘사되어있진 않지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의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두 의심을 이렇게 구분해 봤습니다. 첫 번째는 ‘대상’에 관한 의심이고 두 번째는 ‘상황’에 관한 의심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의심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물 위에 떠 있는 대상이 주님이심을 증명해 보이라는 베드로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함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중에 풍랑으로 인해 믿음을 잃은 것에 관해서는 베드로를 질책하셨습니다. 왜 의심했냐고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대상에 관한 의심은 괜찮다. 내가 누구인지 의심하고 질문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너에게 주어진 상황이 나를 향해 오는 길,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무관하다 여기지 말거라. 너에게 주어진 삶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다.” 

 

질문하라 그리고 은총을 믿어라!

 

사랑하는 쓰임교회 공동체 여러분,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하나님에 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은 굉장히 불온하다고 여겨졌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믿음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교회 안에서 풀어내지 못하는 질문들, 억압됐던 의심들을 결국 교회 밖에서 찾으려고 하게 된 것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답답함을 느낀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잘못이자 목회자들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애정 어린 질책은 딱 한 순간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달리 보지 못한 것에 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삶의 의미에 관해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것에 관해 예수께서는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향해 걷는 가운데 풍랑을 마주치자 흔들렸습니다. 상황은 우리를 속일 때가 많고 어려운 상황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은총의 길이자 기회임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두려운 삶의 상황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물론 삶의 불안이 닥칠 때 그것을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들과 떨어져 산에서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분 앞에 도움을 구해야합니다.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신앙은 훈련이고 축적물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우리의 몸으로 느끼듯이 주님의 마음을 민감하게 느끼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아틀리에

이작가야의 아틀리에(A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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