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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쓰임 Note] 하나님을 따를 때 주어지는 자유함

20170212 쓰임교회 주일설교

 

하나님을 따를 때 주어지는 자유함

 

<신명기 3015-20>

 

15.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16.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대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당신들이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또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17. 그러나 당신들이 마음을 돌려서 순종하지 않고, 빗나가서 다른 신들에게 절을 하고 섬기면,

18.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경고한 대로, 당신들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할 그 땅에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19.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시오.

2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당신들이 잘 살 것입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선택이 주어진다.

 

빛으로 오신 주님의 사랑이 이곳에 모인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설교 초반부터 여러분께 질문 한 가지를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게 태어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좀 나쁘게 태어난다고 보십니까? 조금 어려운 말로 성선설, 성악설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함을 두고 사람은 날 때부터 선하다 보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답은 모릅니다. 정답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선택이 주어진다고 말입니다. 저는 인간에게는 생존의 본능을 위한 끊임없는 선택이 주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선해 질 수도 악해 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샤르트르(Jean Paul Sartre)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BD사이의 C.’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사람의 인생은 Birth(탄생)Death(죽음) 사이의 Choice(선택)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일단 태어나면 죽음이 오기까지 계속되는 선택 속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지나 온 시간을 돌아보면 매순간이 선택의 순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 앞에는 두 갈래 이상의 길이 놓여 있는 것을 느낍니다.

 

모세의 전통이 말하는 두 개의 길

 

오늘 본문 신명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 모세가 등장합니다. 여러분에게 모세는 어떤 인물로 기억됩니까? 하나님이 이끄신 역사의 굵은 줄기 하나는 아브라함 전통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의 전통은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져 나중에는 예수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역사의 줄기와 평행선을 달리는 또 하나의 작지만 소중한 전통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세에게서 시작되어 여호수아를 경유하는 전통입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가는 지도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모압 평야에서 겪었던 일이 그 중심이 됩니다. 성경이 여러 인물과 다양한 민족들을 통해 반복하여 보여주듯이,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백성과 하나님의 대언자 혹은 예언자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번영의 길 그리고 죽음과 파멸의 길입니다. 모세는 어떤 선택이 어떤 길로 접어들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해당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대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당신들이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또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마음을 돌려서 순종하지 않고, 빗나가서 다른 신들에게 절을 하고 섬기면,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경고한 대로, 당신들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차지할 그 땅에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15-18).”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존재하라.

 

제가 여러분께 모세는 어떤 인물로 기억 되냐고 물었었는데, 이어서 한 번 더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분의 선한 뜻을 신뢰하십니까? 최근에 저희 지방 젊은 목회자분들과 함께 책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첫 모임이 이번 주 중에 있었고 첫 책으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무언가 자꾸 소유함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소유를 유지한 채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에서 구약의 인물 중 모세에 관해 이야기를 합니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는 존재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이야기를 합니다.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이 그 내용의 일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구약성서의 중요 주제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떠나라. 모든 속박으로부터 너 자신을 풀어라. 존재하라!’ 뭔가 어려워 보이지만 또 뭔가 멋있어 보이는 말 같지 않습니까? 이어서 그는 유대 민족의 영웅이 둘 있는데,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모세라고 말합니다. 두 인물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신들이 거주하던 땅을 떠납니다. 익숙함으로부터 탈피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걸어 들어간 곳은 광야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프롬은 광야를 일러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것은 고향이 아니다. 도시의 부(부유함)도 없는, 바로 유목민의 땅이다. 유목민은 그들이 최소한으로 필요로 하는 것만을, 다시 말하면 쌓아두는 재산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필수품만을 소유한다.” (p.79)

 

그런데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고향 즉, 옛 생활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왜 일까요? 왜냐하면 사실 광야의 삶과 유목민으로 사는 삶은 불확실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삶의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줍니다. 아마 저희들도 저 상황에 있었다면 저들과 얼마나 다른 생각과 판단을 했을까 싶습니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있어서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만큼만 거두어들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탐욕과 소유적인 생활을 하지 말 것에 관한 당부입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법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조건을 주시는 것, 다시 말해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시는 게 우리를 귀찮게 하게 하기 위함입니까?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하나님의 장난입니까? 사실 일반적으로 규칙이나 법은 강제성이 있기에 저항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오늘 제가 모세가 한 말과 에리히 프롬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통해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의 당부는 우리가 더 자유롭게 살기를, 더 존재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오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자손들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라 말합니다(19). 그리고 그 방법을 일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살 것이라 말했습니다(20). 오늘 이 시간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고 또 그의 길을 따르는 것이 무얼 말하는지 그리고 그의 명령이나 규례나 법도는 어떻게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게끔 이끄는지 살펴보진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무엇이냐면, 모세가 유대 민족과 이야기 나누는 그 장소가 어디인지 또 그들은 어떤 상황가운데 처했는지를 통해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모든 행위는 곧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갈 것을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저희의 삶 가운데도 늘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바라는 것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려놓을수록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르는 것이 생명을 풍성케 하고 내면이 번영하는 길임을 잊지 않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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