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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기록 Note] 하나님은 누구신가?

[Lumix gx9 / 20mm]

 

지난번 ‘예수는 누구인가?’에 이어 ‘하나님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여기서 중요한건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 기독교가 가르치던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인식의 틀 안에서 하나님을 정의 내려보려 한다. 시도이고 도전이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마음과 생각 속에 맴돌고 있었지만 표현되지 못한 하나님 설명방식을 대신해 줄 글귀를 적어보고 조금의 내 생각을 보태볼까 한다. 

 

1. 김경재, 송기득, 오강남, 장회익, 최만자 외 <내게 찾아온 은총>, 한국기독교연구소

 

“하나님 고백은 어떤 이론이나 이름표에 가둬둘 수 없다. 역시 내겐, 나의 작은 책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름 없는 하나님>이시다. 인류사는 이름 없는 하나님을 자신의 역사체험과 문화종교 맥락에서 이해하고 경험한 대로 여러 가지 별호를 붙여서 불렀다. 상제, 천명, 엘로힘, 야훼, 알라, 법신불, 비로자나불, 하눌님, 데우스, 브라만, 쉬바 등등이 모두 그런 유일신의 별호들이다.” (김경재, p39)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느냐”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곧 ‘나’다. ‘나’라고 하는 분”이라고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윤석철, p109)

 

“신학은 신앙의 체계를 연구한다지만 저는 연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되시기 이전부터 ‘무엇’이라 불리며 이 땅에 계시던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윤석철, p113)

 

“기독교가 이 땅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이 땅에서 생명을 보살펴 오신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한울님 상제님 천제님이 기독교가 고백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이 땅에 계셨던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신앙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윤석철, p120)

 

이들의 발언은 굉장히 위험하다. 전통적으로 고백되어진 하나님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위험한 발언에 동의를 표한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또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접속되면 될수록 그는 성서 안에 담겨는 있지만 그 안에는 머무는 존재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김경재 교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하나님을 ‘상제, 천명, 엘로힘, 야훼, 알라, 법신불, 비로자나불, 하눌님, 데우스, 브라만, 쉬바 등’과 동일한 존재로 느꼈고, 윤석철 회장은 ‘하느님, 한울님, 상제님, 천제님 등’과 동일한 존재로 느꼈다. 하나님은 특정한 종교 안에 머무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유대 이스라엘 역사가 쓰여질 당시 유대 땅에도 계셨고, 그와 동시대였던 대한민국의 상고시대에도 이미 계셨다. 이러한 생각을 다원주의나 범신론, 범재신론과 같은 개념 안에 넣고 싶지는 않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안녕하세요.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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