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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작가야의 일상 에세이

[책] "그리스도교 영성의 역사" 근대 교회의 영성

[Lumix gx9 / 14mm]

<그리스도교 영성의 역사>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인 Ⅳ. 근대 교회의 영성부분이고, 하위 항목으로는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 영성, 경건주의 영성, 교회 현장에서 타오른 영성의 불꽃, 20세기의 영성이 있다. 

 

▍먼저,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 영성에 대해 살펴보자. 여기에 속하는 인물로는 토마스 뮌처, 조지 폭스가 있는데 이들은 ‘열광주의자’들이었다. 열광주의자들은 재세례파교도들이었고, 토마스 뮌처(1490-1525)가 그 우두머리였다. 뮌처의 선구자로는 터툴리안(c.160-225)과 요아킴(c.1132-1202)이 있었다. ‘열광주의’는 ‘하나님이 그대 안에’라는 말인데, 16세기의 열광주의는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천년왕국설을 믿었다. 도덕폐기를 주장했고, 교회와 모든 정부의 제도를 반대했다. 이들은 ‘구원받을 사람들’을 따로 구분한 분파주의이기도 했다. 

 

재세례파 운동은 1535년 사라졌는데 ‘열광주의’는 살아남았고, 이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바로 조지 폭스(1624-1691)였다. 그는 친우회(Society of Friend)와 퀘이커교를 창설했다. 그는 1646년 계시를 받고 종교제도의 필요성을 거부했으며 교리도 반대했다. 하나님은 인간 안에 내적인 빛을 통해 말씀하시며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혼 불꽃인 ‘씨알’을 심어두셨고 이 ‘씨알’이 깨어나야 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열광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의 가르침에는 어떤 연대성과 평온함이 내포돼 있었다. 그의 별나고 개인주의적 위험이 있는 가르침을 구원한 것은 공동체였다. 

 

#. 급진적 프로테스탄트의 영성: 정서적이다. 무엇을 말하는가에 따라 유념적, 무념적 달라짐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경건주의 영성이다. 경건주의는 고전적인 프로테스탄트 사상과 급진적 프로테스탄트 사상 사이에 놓여 있다. 이 경건주의는 1960년대의 급진적인 신학의 반동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 부활한 것인데, 이것이 세 번째 주기인지 또는 고전적 경건주의의 재연인지 역사만이 말할 수 있겠다. 경건주의는 독일신학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만의 특징을 지닌다. 감상적⦁개인적이고 반지성적이며 하나님 임재에 대해 자축하는 감정을 나타낸다. 

 

경건주의의 고전적 표현은 필립 야곱 스페너(1635-1705)에게서 유래됐지만 어떤 이들은 요한 아른트(1555-1621)가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른트는 루터교 신학자들의 논쟁적이고 사소한 의견다툼에 저항했고, 영적인 삶에 대한 교리를 부흥시키기 원했다. 그는 에큐메니컬 영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문적인 의미에서 경건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새 삶’에 관심했는데 이 새 삶은 지성을 희생하면서 얻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에게 신앙이란 느끼는 행위인 만큼 사고하는 행위이고 의지하는 행위였다. 

 

경건주의라는 이름은 스페너가 『경건의 학교』(비밀 집회소)라고 부른 자신의 집에서 만나는 모임에서 유래된 것이다. 스페너의 활동은 루터교 평신도 영성지도의 틀 안에서 한 전통을 조성했는데, 이 전통은 안셀름, 도미니코회, 프란시스드 살레, 앨러드까지 이어진 전통에 기초한다. 이 전통을 웨슬리도 이어받았다. 

 

스페너의 관련인물 프랑케(1663-1727)는 구원하는 신앙의 유일한 보증으로 ‘회심’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 회심은 조명이라는 개념과 달랐는데, 조명은 의식 고양과 확장을 일으키는 것에만 머문다면 회심은 내면의 본성과 겉모습이 변하도록 영향을 끼친다. 이 개념은 경건주의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칼빈주의의 예정신학과 만났을 때 그러했다. 

 

완고한 칼빈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미국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1705-1758)가 있다. 그는 지옥 불 설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종교가 도덕주의로 빠져가고 있을 때 경건주의를 가르친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안에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있다고 믿었고, 하나님은 인간 안에 씨를 심으시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 자라도록 “물을 주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슴의 감정’으로 이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섬세한 지성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감성적 위안의 필요성을 설교한 경건주의자라고 단순하게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미국 영성의 중요한 사람으로 존 울만(1720-1772)이 있다. 그는 친우회 안에서 ‘천거된 목사’로써 순회설교자로 30년간 목회했다. 눈에 띄는 점은 그의 여행기 일기를 보면 신비적인 각성과 사회적 관심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노예제도와 전쟁을 반대했고, 미국의 노예폐지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드워드와 울만을 다음에 소개할 진젠도르프(1700-1760)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모라비안 형제단의 창시자였던 그의 신학은 ‘머리를 떠나 가슴을 지녀라, 그리고 당신의 온 가슴으로 믿어라’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 귀족이었던 그는 헤른후트, 조지아, 헤른탁, 런던 등에서 여러 모라비안 단체를 설립하도록 도왔으며 조지아에서 존 웨슬리를 만나게 된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감성적이었고 예수의 피에 심취해 있었다. 모든 남편들은 사실 대리 남편이라고 가르쳤으며 결혼에서 성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 프로테스탄트에 죄의식을 더 보태게 됐다. 

 

존 웨슬리(1703-1791)는 많은 경건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많은 경건주의자의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지성을 지닌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성공회 사제로 살다 죽었지만 열광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회심 사건은 유명한데,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모라비안 모임에 갔을 때 루터의 로마서 서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는 예정론을 반대했고 믿음과 은혜로 의롭게 된다고 깊이 믿었다. 그에게 있어 구원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면서도 ‘점진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산업혁명으로 뿌리를 잃고 찢겨진 세상 안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알았기에 그의 영성은 대부분 그 시대적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는 동생 찰스 웨슬리가 있었는데 유념적이고 정서적인 경건을 체험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찬송가’의 기법을 완성했다. 그의 신앙의 초점은 사회적이고, 행동은 세상 섬김에 있었으며 목표는 내세보다는 현세에서의 삶에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교회 현장에서 타오른 영성의 불꽃이다.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는 영성생활의 독특성을 말할만한 구체적 진술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몇몇의 예외인물들이 있었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 발전으로 어리석은 쾌락주의를 가져왔으며 영적인 경험에 대한 기대가 깨지는 실망스런 사태에 직면했다. 

 

웨슬리와 동시대 사람인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 교인 게르하르트 터스티전(1697-1769)은 신비주의 신학자였다. 그는 성서에 깊이 뿌리를 두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정신 안에서 또는 마음 안에서 잠자고 있는 힘을 깨우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환영으로 이끌 수 있기에 ‘영적인 현상’을 아주 의심했다. 

 

이 시기에 로마카톨릭의 경우 프랑스 군대의 탈영병이며 신학교의 낙오자로, 아르시의 주임 사제로 알려진 마리 비안네(1789-1859)와 깔멜회 수녀인 리시우의 떼레제(1873-1897)가 유명하다. 비안네는 위대한 고백자요, 민중들의 신실한 사제였고, 떼레제는 민중들의 성자요, 프랑스의 여자수호자였다. 

 

또한 로마카톨릭 사람으로 지성의 사람 홉킨스(1844-1889)가 있었는데, 그는 영국 사람이며 예수회 회원으로 시인이었고 시대에 앞선 사람이었다. “내면의 풍경”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다음 소개할 로마카톨릭 인물은 프리드리히 폰 휘겔(1852-1925)이다. 그는 결혼한 평신도이고, 성서비평에 대한 열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철학자요 신학자였으며, 영성은 열려 있고 모호하며 직관적이었다. 경건주의와 세속주의 둘 다 거부했다. 

 

18세기 후반, 그리스 교회에서부터 정교회의 영성이 부활했다. 니고데무스(1748-1809)는 이 운동의 지도자였는데, 그는 관상행동에서 몸과 영혼, 곧 전인(全人)의 참여를 깊이 이해했고 ‘예수기도’를 한결같이 드렸다. 마지막으로 19세기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을 부흥시킨 인물로는 은둔자 테오판(1815-1894)이 있다. 그는 인간을 몸, 혼, 영혼, 가슴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았으며 가슴을 다른 셋을 포괄하는 기도의 중심기관으로 여겼다. 또한 사람은 머리로만 기도를 드릴 수 없다고 말했고, 가장 적절한 기도의 방식은 ‘예수기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영국교회의 여성으로 작가, 피정 지도자, 번역가였던 이블린 언더힐(1875-1941)이 있었는데, 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영국국교회의 신비주의를 살려내려는 사명을 띤 사람도 있었다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마지막 부분은 20세기의 영성이다. 서방교회는 그리스도교 영성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끼친 ‘의식’의 혁명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고유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정의인 ‘의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으며, 의식은 여전히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적인 초점이 되고 있다. 

 

유대교 신비가 아브라함 헤셀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의 질문에 ‘세상에서, 성서에서 그리고 거룩한 행동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덧붙여 함마숄드도 “우리 시대에 거룩의 길을 가려면 반드시 행동의 세계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정신이나 마음의 구체적 실현인 행동이 중요함을 말하는 듯하다. 

 

오늘날의 영적 스승 중에 시몬느 베이유(1909-1943)가 있다. 유대인이었지만 자신을 가톨릭 신자로 여겼던 그녀는 아주 폭넓게 책을 읽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쓴 책만을 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신체적인 아픔 때문에 큰 고통을 겼었고, 이러한 고통의 민감함 때문에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과 강력하게 일치시켰다. 그녀의 영성 중심에 ‘그리스도의 수난’이 자리하고 있는 건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기다림에 응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는데, 고통은 한동안 하나님이 없는 듯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영성은 경건주의의 위선들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간다. 아름다움에 대한 큰 사랑을 가졌지만 감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진 않았다. 

 

20세기에 존경받는 영성가로 토마스 머튼(1915-1968)이 있다. 그는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은 기도와 관상의 방식이라고 확신했고, 신비적인 방법을 현실로부터의 도피로 여기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근본에서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다. 그는 관상가가 되기를 원했으며 무념적인 접근방법을 주장했지만, 일반적으로 유념적이고 사색적인 인물이다. 또한 정적주의를 반대했고 반드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침례교 흑인 설교가인 마틴 루터 킹(1929-1968)은 프로테스탄트 신비가들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가 가진 목적표상은 사랑의 공동체였다. 그의 신심은 유념적이고 정서적이었지만 감성적인 것은 아니었다.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 비폭력을 사용할 때, 가장 깊은 영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 책의 저자는 그리스도교 영성은 다양하고 복합적이기에 쉽게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연구의 최종결과물은 기도생활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자료목록 같은 것이다. 이 연구가 주는 영향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교 영성의 본질을 천박한 교리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을 막아주고, 기도의 방법들과 목적에 대한 명칭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하나 됨과 완전을 향해 오르는 ‘산’, 깨끗한 마음과 가난한 영혼을 위한 ‘사막’을 거닐어야 한다. 여기에는 위험과 위기가 있지만 이 또한 피할 수 없다. 이러한 험난한 여행에서 중요한건 식별(분별)인데, 그렇다고 식별이 위기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기의 영성 방법을 확정해 두고 그것을 잣대삼아 남의 영성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관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사이에, 그리고 의식의 수용적인 양식과 행동적인 양식 사이에 있는 미묘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을 닫는 발제자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본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BibleSalon)

안녕하세요. 말씀살롱(BibleSalon)입니다. 다양한 감수성과 인문학 관점을 통해 말씀을 묵상합니다. 신앙이라는 순례길에 좋은 벗이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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