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일요일 / 내가 누군가에게 어른의 형상을 보였다니
"지독한 악취에 기절하려고 하는 애인에게 시인은 종부성사를 끝내고 무성한 풀꽃들 아래 백골들 사이에 누우면 우아한 그대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그친다면 이 시는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너무도 흔한 개념을 전달하는 교훈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마지막 연에 담아놓았다. 시인은 아름다운 애인에게 그대의 몸에 곰팡이가 슬고 구더기들이 키스를 퍼부을 때 그대의 품이 해체되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나는 내 사랑의 형상과 거룩한 본질을 간직해두었노라고 그 구더기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김인환, <타인의 자유>, 난다, 2020, p.183)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타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타자는 절대적인 타자를 말하기도 하고, 불현듯 출현한 우연한 타자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타자의 도움 없이 사랑을 한 단계 높이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도 인간의 사랑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그 사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들은 사랑의 한계를 너무 잘 알기에 그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보들레르는 화창하고 아름다운 아침에 애인과 함께 나선 산책길에서 썩은 짐승의 사체를 보았다. 그 사체는 아름다운 그날 아침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듯했고, 그랬기 때문인지 보들레르는 삶의 유한함과 부질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시인은 애인에게 누구나 삶의 끝은 이러한 형상이 됨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기서 끝나면 그의 시는 그저 평범한 '교훈 시'에서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를 마지막 연에 담아놓았다.' 시인은 애인에게 당신의 몸이 이처럼 해체되더라도 자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형상과 거룩한 본질을 잘 간직해두었노라고 구더기들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황현산 선생은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 이야기를 옮겨 놓을까 한다.
"인간의 생명은 연약하여 머지않아 스러질 것이기에 오히려 영원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바치는 사랑은 변덕스럽고 불완전하지만 스러지는 인간은 그 사랑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영원한 형상으로 간직해둘 수 있다. 삶은 덧없어도 그 형상과 형식은 영원하다. 그래서 한번 살았던 삶은 그것이 길건 짧건 영원한 삶이 된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290쪽)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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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인환
- 출판
- 난다
- 출판일
- 2020.03.20
- 저자
- 황현산
- 출판
- 난다
- 출판일
- 201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