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6일 수요일 / 어깨가 찌뿌둥한 날
"시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이미지이다. 구원이나 해방이 시와 연관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들은 구태여 말하자면 목적 건너편의 목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이미지가 아니라면 구원이나 해방은 시를 수사적인 장식으로 타락시키게 될 것이다. 시는 이미지들의 융해이지 개념의 교환이 아니다.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시쓰기와 무관하다. 시쓰기는 감각 활동이지 사유 활동이 아니다." (김인환, <타인의 자유>, 난다, 2020, p.176)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럽다. 그 어려운 것을 좋아하다니 말이다. 내 수준에 맞는 시집을 사서 기웃거려봤지만 아직 내 내공으로는 시라는 장르의 근처만 맴돌았을 뿐이다. 김인환 선생은 황현산 선생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시의 유일한 목적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시라는 장르는 이성의 활동이 아니라 감각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더 아리송하다. 내 생각에 황현산 선생은 언어의 뿌리, 그 본질까지 내려가서 이 논지를 시작했다고 여겨졌다. 사람이 이해하기 가장 어렵다는 문학 장르인 시. 시가 어려운 이유가 단순히 언어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해야 하거나 조바심 내지 않은 깊은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감각의 차원에 있었다니 이 말이 참 새롭다. 시를 잘 읽기 위해서는 '새롭고 싱싱하며 생동하는 이미지들'이 필요하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나누는 말씀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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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인환
- 출판
- 난다
- 출판일
- 202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