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9 청파교회 새벽설교
하나님께서 숨으시다
<스바냐 1장 1절>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주님께서 스바냐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의 아버지는 구시이고, 할아버지는 그달리야이고, 그 윗대는 아마랴이고, 그 윗대는 히스기야이다.
스바냐서의 무게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스바냐 1장입니다. 스바냐 예언자는 7세기에 활동한 예언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활동 시기는 예언자 예레미야(BC 640-609)와 겹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스바냐’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의 이름의 뜻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우리는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의 뜻 한 가지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다’입니다. 이 이름의 뜻을 통해서 하나님이 스바냐를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의 뜻의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숨다’입니다. 이 이름의 뜻을 통해서 하나님이 남유다의 부패를 보며 자신의 몸을 숨기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바냐라는 책은 세 장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책이지만, 이 책 안에는 구약의 예언서들이 지닌 특징들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아모스, 미가, 이사야가 말하는 지도자들의 불의와 억압이 등장하고 또 호세아, 에스겔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배교와 불신앙,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의 촉구 등도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스바냐라는 책은 예언서들의 요약본으로 삼기에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 백성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그럼 이제부터 스바냐서 1장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1:1은 그의 활동 시기와 출생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스바냐서의 저자는 그의 출생에 관해 말하기를, “그의 아버지는 구시이고, 할아버지는 그달리야이고, 그 윗대는 아마랴이고, 그 윗대는 히스기야이다.”(1)라고 말합니다. 예언서 가운데 이렇게 예언자의 계보를, 그것도 시대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는 책은 이 스바냐서가 유일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극히 드문데,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히스기야 임금인 것으로 보아 스바냐는 왕족 출신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서두의 서술들은 이 스바냐서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1:2-6절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닥칠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 예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에 흠뻑 빠져 지냈는데, 그 우상의 범위는 매우 넓었습니다. 그들은 바알 신상을 섬겼고, 바알을 모시는 이방 제사장들 또한 섬겼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을 숭배했는데 이 하늘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숭배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밀곰 혹은 말감(개역개정)을 섬겼는데, (‘그들의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이 밀곰은 곧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며 살았고, 그들에게 늘 맹세를 일삼 코 살았습니다. 이러한 모습만 보더라도 유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하나님께 큰 실망감을 안겨 준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심판의 예고는 마치 창세기에 등장한 ‘대홍수의 때’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본문 2-3절에서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말끔히 쓸어 없애고 사람도, 짐승도,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까지도 쓸어 없애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유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우주적인 심판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심판받는 이유
계속해서 1:7-13절에도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이어지는데, 이 심판은 유다 백성들에게 아주 굴욕적 심판이 될 뿐만 아니라 유다 사람들의 기대가 완전히 뒤집히는 심판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면, 스바냐는 심판의 날이 다가왔으니, 모두 주님 앞에 입을 다물고 주님께서 차려 놓은 예식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자리에 제물을 함께 나눠 먹을 사람들을 부르셨는데, 유다 백성들은 이 자리에 기쁨으로 초대된 것처럼 등장합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의 기대는 다음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뒤집히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은 주님이 차려 놓은 제사 자리에 손님으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희생 제물로 초대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대된 진짜 손님들은 유다 백성이 아닌 바로 유다 민족의 대적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유다 민족에게 정말 치욕적이고, 굴욕적일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 민족이 하나님께 이러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우상 숭배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해서나 하나님이 일으키신 일들에 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그들은 “주는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리지 않는다.”(12)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안일했습니다. 긴장감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 안일함과 긴장감 없음 때문에 그들은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13).
이러한 사실은 1장 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14절에서 말하는 ‘주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오면, 사람들이 마련했던 안전장치들은 전부 쓸모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전쟁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들을 심판할 예정인데, 부자들은 은과 금으로 어떻게든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겠으나, 결코 자기 목숨을 건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 날’이 되면, 자신들은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고 자신들의 대적들은 멸망하게 될 거라 기대했겠지만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뒤집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숨다
스바냐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숨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감추시게 될 경우, 우리는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숨고자 하시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게 되더라고 그분의 형상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찾고자 하는 바를 찾지 못할 때, 사람은 몹시 답답함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시기 전에 어서 잘못된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누군가를 함부로 심판하시거나 자기 멋대로 사람들 곁을 떠나는 그런 분은 아니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 그리고 안일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곁을 떠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늘 긴장하며 살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진부한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참 의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일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에 너무 깊이 몰입하고, 집착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진 않은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방식과 시간으로 성실히 일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바냐 1장은 오늘 우리에게 이 두 가지의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하루, 이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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