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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7)] 누구에게나 열린 길

20240404 청파교회 새벽설교

 

누구에게나 열린 길

 

<시편 134편 1-3절> 

 

1. 밤에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주님의 모든 종들아, 주님을 송축하여라. 

2. 성소를 바라보면서, 너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여라. 

3.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순례자의 노래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34편입니다. 시편 134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의 마지막 노래 이야기입니다. 

 

시편 120편부터 오늘 함께 나눌 시편 134편까지에는 저마다의 제목이 붙어 있고, 그 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부제가 있습니다. 그 부제가 방금 말씀드린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부제가 맞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속에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히브리말 하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히브리말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뜻하는 듯하여, 많은 주석가들이 이 시편들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에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우리는 성전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노래, 그 마지막 쳅터를 살펴보겠습니다. 

 

밤을 맞은 사람들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밤을 맞이했습니다. 시인은 밤을 맞은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을 높여드리라고 요청합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밤에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주님의 모든 종들아, 주님을 송축하여라.”(1) 1절의 이야기이스라엘 민족밤중에 드리는 예배를 암시합니다. 밤중에 노래를 부르며 주의 전에 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이사야서 30장 29절에도 등장합니다. 이사야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실 것을 믿고, 거룩한 이 밤의 절기에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며, 기쁨으로 주님께 나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거룩한 절기무엇을 말하는지 알 순 없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한밤 중에 성전을 향해 나아가는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간, 잠시 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밤은 밤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시편 4편을 보면, 제목에 ‘저녁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인힘든 하루(시절)를 보내고 저녁을 맞았습니다. 그는 일과 중(과거)에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었지만, 주님의 얼굴을 떠올리자 마음에 평안이 깃들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매일 저녁마다 주님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저녁은 높게 떠올랐던 태양밤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흐름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밤을 앞둔, 저녁 시간을 보내는 시인의 마음분주함에서 차분함으로 이동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밤에 드리는 예배 

 

반대로 동이 트는 아침사람의 몸정신깨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아침은 사람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시간이 됩니다. 낮은 사람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낮에는 우리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 시간은 말씀드린 대로 활발했던 낮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밤을 준비하기 위한 예열을 하는 시간입니다. 시편 4편의 시인바로 이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밤은 작은 죽음에 해당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죽은 사람잠에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독일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ler)는 그가 쓴 (유일한) 문학 작품인 <독일인의 사랑>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는 밤의 정령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모른다. 밤의 정령이 우리의 눈을 감겼다가 아침에 다시 뜨게 하리라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최초의 인간이 이 낯선 친구의 손에 몸을 맡겨야 했을 때, 그는 아마도 대단한 용기와 깊은 믿음이 필요했으리라.” (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배명자 옮김, 더클래식, 2020, p.136) 물론 우리는 잠을 잘 때,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뮐러가 말한 맥락에서 보자면, 사실 잠이 든다는 것곧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또 잠든 자의 모습죽은 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잠자리에 들기 전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밤 시간을 통해,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곱씹게 됩니다. 기분 좋은 일도 떠오르지만, 그 반대의 일들 또한 떠오릅니다. 

 

그래서 한밤 중에 드리는 예배낮에 드리는 예배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야기도회에 참석하거나 철야기도를 드렸던 경험들이 있으실 겁니다. 물론 밤은 사람을 너무 감정적으로 만들 수 있기에 밤의 감성을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래도 밤이 주는 세심하고 감각적인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그 시간은 주님과 깊이 연결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밤을 맞아서 주님의 전에 나아간 순례자들아마도 본인들은 주님께 더 가까이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이어서 시인은 말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라고 요청합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성소를 바라보면서, 너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여라.”(2) 손을 드는 행위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일상적인 몸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발화된 언어쓰인 언어를 접합니다. 발화된 언어사람들의 대화의 언어를 가리키고, 쓰인 언어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한 가지의 언어가 또 있는데, 그것은 몸의 언어입니다. 사람은 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자신이 가진 신체의 일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오늘의 시인은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고 주님을 송축하라고 요청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큰 몸짓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기도를 할 때크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는 겸손히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기도자의 겸손간절함, 차분한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기도의 모습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기도자의 열정적인 간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것이나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비슷한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의 몸확장시키고, 가장 크게 만든 상태에서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말씀드린 대로 인간이 주님께 다가가기 위해 몸을 가장 부풀린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을 맞아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을 향해, 시인은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송축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하며, 오늘의 짧은 시는 마무리됩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길

 

오늘 함께 나눈 시편 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그 마지막 이야기였습니다. 성전은 곧 주님이 계시는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향한다는 말곧 주님께로 나아감을 뜻합니다. 주님께로 향하는 길다양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아침이나 밤, 낮과 저녁 언제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는 많이 가진 자, 적게 가진 자, 힘이 있는 자, 힘이 없는 자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의 품한도초과가 없습니다

 

모든 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언제나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함께 일하자고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아멘’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with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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