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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파 Note

[청파 Note / 시편 (29)] 보호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20240418 청파교회 새벽설교

 

보호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시편 144편 1-2절> 

 

1.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내가 찬송하련다. 주님은 내 손을 훈련시켜 전쟁에 익숙하게 하셨고, 내 손가락을 단련시켜 전투에도 익숙하게 하셨다. 

2.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뭇 백성을 나의 발 아래에 굴복하게 하신다. 

 

 

시인들의 고백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144편입니다. 길었던 시편 묵상도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시편 144편은 마치 한 나라의 왕이나 위대한 전사가 드리는 기도와 같습니다. 왜냐면 시인은 기도 중에 전쟁, 전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이러한 일들을 맡기셨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한 민족과 한 나라를 대표하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처음부터 시편을 잘 따라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시인들의 고백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임을 말입니다. 아무래도 시인들의 고백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시인(시편 19편)은 주님의 말씀이 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더 달콤하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시인(시편 29편)은 주님의 목소리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시인(시편 144편)은 주님을 반석이나 요새 혹은 산성이자 구원자로 고백했습니다. 반석과 요새 그리고 산성은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인의 이 고백을 통해 그가 처한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시인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그러한 상황 가운데 시인은 주님께 무엇을 바라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개입

 

시인은 먼저 크고 높으신 주님께서 사람을 살피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의 구원자,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뭇 백성을 나의 발아래에 굴복하게 하신다.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3-4) 

 

이 고백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실 겁니다. 시인의 이 고백은 앞서 다룬 시편에도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시편 8편에 등장했었습니다. 시편 8편을 기록한 시인도 주님께 이와 유사한 고백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두 시편이 같은 저자의 작품인진 알기 어려우나 서로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오늘의 시인은 몹시 놀란 상태입니다. 만물을 주관하는 주님께서 약하고 초라한 인간의 삶에 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사람의 일생이 한낱 숨결과 같고, 사라지는 그림자 같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과거에 어떠한 일들을 통해 삶의 무상함과 초라함을 경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렇게 버려지고 초라한 인생에 직접 개입해 들어온 것입니다. 그동안 시인은 외로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젠 주님이 함께 계시니, 그는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자기 인생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자, 시인은 이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도움 

 

이제 5절의 말씀부터 보면, 시인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로 인해 목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원수들을 흩으시고, 그들의 손에서 건져주시기를 말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번개를 번쩍여서 원수들을 흩으시고, 화살을 쏘셔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주십시오. 높은 곳에서 주님의 손을 내미셔서 거센 물결에서 나를 끌어내시고, 외적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6-7) 오늘의 시인은 주님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원수들의 위협이 시인의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함께 나누고 있는) 시편 144편에는 시편 8편의 내용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의 시가 더 인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는 바로 시편 18편입니다. 

 

시편 18편은 왕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뒤에, 도움을 주신 주님께 찬양을 돌리는 시편입니다. 이 시편을 보면,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시 18:9-16). 특히 시인은 지진과 폭풍, 비구름과 번개, 천둥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로 보았습니다. 시편 144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시인도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통해 원수를 벌하시는데, 하나님이 원수를 벌하시는 도구가 바로 하늘과 산 그리고 번개와 물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시인은 1. 주님이 2. 이러한 피조 세계를 통하여서 원수를 물리치시고, 자신을 원수의 위협에서 구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한번 더 주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10-11절에서 그는 말합니다. “왕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신 주님, 주님의 종 다윗을 무서운 칼에서 건져 주신 주님, 외적의 손에서 나를 끌어내셔서 건져 주십시오. 그들의 입은 헛된 것을 말하며, 그들이 맹세하는 오른손은 거짓으로 속이는 손입니다.”(10-11) 시인은 적들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원수들은 입을 열 때마다 거짓을 말하며, 오른손을 들고 맹세하는 것들마다 모두 속임수뿐이라고 말합니다. 시인 주위에는 시인을 넘어뜨리기 위한 숱한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숨 쉴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어디를 보아도 몸을 편히 누일 곳이 없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오늘의 시인은 주님의 도움 밖에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시인의 간청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주님께 아룁니다. 그는 복 받는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사실 시인은 복 받는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 알려주려는 마음보다, 자신과 자기 백성들이 복 받는 백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님께 간청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어릴 때부터 나무처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우리의 딸들은 궁전 모퉁이를 장식한 우아한 돌기둥처럼 잘 다듬어지고, 우리의 곳간에는 온갖 곡식이 가득하고, 우리가 기르는 양 떼는 넓은 들판에서 수천 배, 수만 배나 늘어나며, 우리가 먹이는 소들은 살이 찌고, 낙태하는 일도 없고, 잃어버리는 일도 없으며, 우리의 거리에는 울부짖는 소리가 전혀 없을 것이다.”(12-14) 

 

시인은 이미 이러한 일이 자신에 일어난 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는 주님을 잘 섬김으로 자기 백성들이 이러한 삶을 누리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보호막이 되어주는 삶

 

오늘 우리는 시인의 고백을 보며, 그에게는 현재 그를 지켜줄 단단한 보호막이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숱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최초의 보호를 받게 되고, 자라면서 선생님이나 이웃과 같은 타인을 통해 보호를 받습니다. 누구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보호 없이 홀로 성장한 이는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그리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가지고 누릴 것이 많아도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쉽게 흔들리고 또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도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든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만 든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보호막이 또한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작가야의 말씀살롱

살롱(salon)에서 성경에 담긴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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